9. 출산보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유수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by 유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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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내게 장막 뒤편의 공포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생명이 내 몸을 뚫고 나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의 고통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출산 하기 몇 달 전부터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맘 카페의 출산 후기를 3개씩은 꼬박 읽었다.


어떤 이는 기차가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생리통의 300배가 넘는 통증이라고 했다. 그런 고통을 세상 모든 엄마들이 버텨냈고, 또 세상이 그 고통에 대해 '엄마가 되려면 누구나 겪는일' 쯤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나는 진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아이를 출산했다.


유도분만으로 촉진제까지 맞고 15시간 가까운 긴 시간 끝에 아기를 낳았지만, 무통주사의 효과로 나는 그 어마어마하다는 진통의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아주 어설프게나마 느낀 고통의 느낌은 그래. 좀 심한 생리통 이었다. 하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였고, 고통이 강도를 더해갈 무렵부터는 무통주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진짜 힘든 순간은 그 다음부터였다. 내 두려움이 출산의 고통에만 꽂혀있었던 탓에, 나는 출산 이후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출산 이후가 비로소 시작이라는 말들을 해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흘려들었었다. 무지한 초보 엄마는 운이 좋아 산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그 이름은 바로 모유수유.


아이가 태어난 시각은 밤 11시대였다. 캥거루 케어 및 후처치를 끝낸 내가 병실로 들어간 것은 거의 새벽 1시. 출산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잤고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어 병실로 오자마자 미역국을 마시다 시피하고 간신히 잠에 들 무렵 전화가 울렸다. 새벽 3시.

'이 시간에 누가...?'


수유실 간호사였다.

"산모님, 아기가 배고파하는데 수유하시겠어요?"


충격이 두 광선으로 나뉘어 내 머리를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와 '애 낳은 산모가 바로 젖을 먹일 수 있는 거였어? 새벽 3시에?' 이 두 생각이 교차하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불과 몇시간 전에 애 낳은 산모가 새벽 3시에도 젖을 먹여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하게 불끈 치솟아 올랐지만, 나는 공식적으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열 달을 품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내 품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실은 좀 어색했다.


조금의 망설임 끝에 "갈게요"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끊고 난 다음 걱정이 차오른다


'그런데 모유수유는 어떻게 하는 거지? 그냥 하면 되는 건가.'


산부인과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에게 "수유하러 갈게요"하니 단호하게 "지금 못 걸어가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다시 벙찐다. '아니, 그럼 수유실에선 날 왜 부른 거지?' 멀뚱멀뚱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게 간호사는 "일단 화장실을 한번 가보세요. 일어나서 어지럽지 않으면 휠체어를 타고 가보시는 게 어때요"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선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리라. 화장실은 가까스로 갔다 왔는데 앉았다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어지럽다.


간호사가 "지금은 무리일 것 같아요. 조금 더 있다가 가시죠"라고 했고, 나는 수유실에 다시 전화해서 "나중에 갈게요"라고 알려줬다. 수유실에서 돌아온 대답은 "그럼 아기 물 먹일게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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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물 먹일게요'가 무슨 뜻인지 그 때의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냥 아기도 물은 마셔야 하니까, 그렇다고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모유를 잘 먹으려면 태어나서 처음은 모유로 먹는 것이 좋단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 것을 본 수유실 간호사는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물'로 모유를 먹이기 위해 엄마인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캥거루 케어 때도 젖을 물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 길이 없었으니 그냥 저는 가슴팍에 안고 토닥토닥만 해줬답니다 ^^) 또 어떤 측면에서 물을 먹인다는 것은 분유를 먹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당시로선 알 도리가 없었던 일이다.


새벽 5시께 다시 한번 수유 콜이 왔을 때, 나는 휠체어를 끌고 아이에게 갔다. 수유실 입구에서 간호사에게 내 정보가 적힌 카드를 보여줬고 손을 씻고 수유실에 들어갔다. 수유실에서 다시 만난 아기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까 캥거루 했던 내 아이가 맞나 싶어 한참을 바라봤다. '혹시 바뀐 거 아니겠지'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신기한 것은 아이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아이는 캥거루 케어를 할 때도 고개를 들고 엄마 아빠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되려는 것인지 수유실에서도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어쩌면 아이도 '이 사람은 누구? 아까 그 사람 맞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유실의 간호사는 내게 젖을 먹이는 자세를 알려줬는데, 잘 되지 않았다. 아이는 세차게 젖을 빠는데 뭔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꽤나 끈기 있게 젖을 빨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의 크기는 성인의 팔뚝 만하다. 너무나 작고 연약하다. 그런 자그마한 아이가 내 젖을 빠는 느낌은 말로 설명 못한다.


나의 새끼에게 내 몸을 매개로 먹을 것을 전하는 것은 나 자신이 포유류가 된 듯한 느낌과 동시에 매우 본능적인 모성이 아이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엄청난 감정과 함께 모유수유는 신체의 어마어마한 고통도 함께 전한다.


쓰라리고 아파 옷을 벗고 입을 때도 힘들었고, 조리원을 나와 집에 있을 때는 젖몸살까지 찾아왔다. 젖몸살이라는 것을 평생 처음 느꼈으니 그게 젖몸살이라는 것도 몰랐다. 오한이 찾아와 몸은 떨리고 열도 나는데 목과 코는 괜찮았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 같은 것인지 알았는데, 친정 엄마는 그건 젖몸살이라고 세상 그 어떤 의사보다 단호하게 처방을 내렸다.


병원 보다는 가슴 마사지를 받는 것이 좋다는 경험자들의 추천에 검색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우리 동네에 가능한 곳이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젖몸살을 낫게 해주는 가슴 마사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자가 없었는데, 바로 코 앞에 있었다니.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사지를 받고나니 신기하게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더 신기한 것은 나중에 젖을 끊을 때는 단유 마사지라는 것을 할 수도 있단다.


그렇게 한 차례의 젖몸살 파도를 지나간 뒤, 나는 나라는 인간이 엄마라는 이름의 포유류가 되는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신체는 이제 자식을 위한 것이 됐고, 나의 신체가 자식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이 동물의 본성이 신비로웠다. (또한 고통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조리원 식당에 앉자마자 맞은편 산모가 처음 본 내게 '젖 잘 나와요?'를 '안녕하세요'처럼 말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문자로 '내게 새로운 자아가 생겼어. 나는 지금 젖병이야'라고 보냈었다.


그래. 맞다.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내겐 새로운 자아가 생겼다. 신체와 신체를 이어준 본능적 자아인 엄마다. 출산의 산통과 모유 수유의 젖몸살과 함께, 나는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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