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엄마의 희생이면 다 해결되니?

아이는 엄마 혼자 기르면 되는 것일까?

by 유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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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육아와 관련, 나를 복잡한 감정에 빠지게 한 일이 있었다.


전업맘인 한 지인이 “아이는 적어도 두 돌까진 엄마 품에서 자라는게 제일 좋대. 어린이집 너무 일찍 보내는 건 불안하지. 아무래도” 라는 말을 워킹맘들이 많은 공간에서 구태여 여러차례 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맘은 전업맘대로 각자의 고충이 있다.


출근하기도 바쁜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하고, 내 퇴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아이가 원에서 나와야 하니 또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 퇴근 이후에도 쉴 수 없고 아이가 잠드는 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 되는 것이 집안 어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워킹맘의 현실이다.


전업맘은 워킹맘의 사정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육아라는 것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루 종일 관찰해야 하다보니 내 시간을 가질 수도 없고 육아나 가사를 전업맘이라는 이유로 혼자 부담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육아나 가사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주어진 환경에서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의 환경이 더 나아질 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은 최선이고 타인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명백한 무례이고 실례이다.


'아니, 저 말을 대체 왜 자꾸 하는 거야? 우리가 아이 어릴 때 어린이집 보내고 싶어서 보내? 어쩔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도 있는 것인데 왜 자꾸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워킹맘들더러 다 직장 그만두라는 거야? 아니면, 죄책감이라도 갖고 살라는거야 뭐야.'


한동안은 그의 말에 꽤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적대감 마저 치밀어오르는 내 모습. 그렇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말이다 싶어졌다.


어쩌면 그는 저런 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은 엄마로 살아가는 삶에서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희생을 배운다.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자신이 가보지 못한 워킹맘과 저 자신을 비교하며 그래도 나의 상황이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다는 생각을 자꾸만 주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안에서 아이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가보지 않은 길, 100%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전업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해주었다.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을 갔지만, 그 덕분인지 아이의 발달이 굉장히 빨라지기도 했다. 아직 20개월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할 줄 알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구사할 수 있는 단어도 제법 된다. 부모와 동 떨어진 세상에서 저 나름의 성장을 거둔 것이 한없이 기특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어린이집을 보낼 때의 짠한 마음과 어린이집에 들어서기 전 괜히 엄마를 꼭 안는 아기를 보면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날의 마음들을 대체로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인의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다”란 말이 나를 자극하면서 그날의 마음들이 자꾸만 내 안을 지배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육아에 있어 뾰족한 정답이란 없어서 그 말만 듣고 덜컥 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품고 살 수는 없다. 워킹맘의 모든 애로사항이 전업이 된다고 해결되는 것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육아가 오로지 엄마의 몫은 아니기에 엄마가 해결사로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는 엄마가 길러야 해”라는 말, 엄마만이 유일한 육아의 주체자이며 해결사라는 전제를 깐 그 발언에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지언정 결코 동의할 수는 없는 내용이다.


도리어 내가 아이를 길러보니 육아는 1명의 전담제 보다는 공동 육아의 방식이 더 적합해 보였다. 실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공동 육아의 형태로 주거 환경이 바뀌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지방 곳곳에서 공동 육아를 하는 이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이 육아는 엄마만의 것이 아닌 공동의 것이라는 개념으로 자리잡히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사회의 인식과 구조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징후들은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에 일어나는 어린이집 사건사고와 관련된 기사 아래에서 나는 충격적인 댓글을 보았다. “애 엄마가 애는 안보고 브런치 먹으며 수다나 떠니까 애가 저런 일을 당하지. 엄마들 정신 좀 차리자”


익명의 누군가는 여전히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있었다. 그 댓글에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이 역시 지나고 보니 또 다른 감정과 해석이 떠올랐다.


한 때는 저 사고방식이 주류의 생각이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이런 생각을 익명이 아닌 공간에서 표출하는 이들이 극도로 적어진 시대까지는 오지 않았나. 저 댓글을 쓴 이가 일상에서 얼굴을 마주한 주변의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


나를 복잡하게 만든 지인의 발언과 익명의 댓글, 과연 그들 스스로도 본인의 생각이 사회의 구조와 맥락을 들여다보고 나름의 해법을 말한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굳이 물어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엄마 한 사람이면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들이 어떤 답을 할지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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