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면
아이를 절대 낳으면 안 되지.
자격도 안 되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
결혼도 육아도 모든 것이 요원했던, 내가 언제 누군가와 결혼할지 가늠조차 못했던 이십 대의 어느 날, 나보다 서너 살쯤 많은 어떤 이가 말했었다.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면 낳을 자격도 없다는 말.
요즘 같이 아동학대가 연일 뉴스에 나오는 시대, 제대로 아이를 기를 수 없다면 낳지 않는 것이 맞다는 말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그날의 이 단호한 발언은 아동학대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놓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철이 지금보다 더 없었던 이십 대의 우리들은 부모로서 아이의 인성과 감성을 제대로 매만져줄 수 있는 그릇이 아닌 자들은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는 말들을 너무나 쉽게 내뱉었다.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곱씹는 데에만 열중했던 탓일 것이다. 부모는 반드시 완벽한 인격체여야만 한다는, 어느 때보다 엄중한 잣대를 들이미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20대의 내가 보면 까무러칠 정도로 완벽하지 못하다. 그 시절의 단호함이 괜히 부끄러워질 정도다.
그때의 우리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 근거로 '나는 내 인생도 제대로 책임지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아이 인생까지 책임질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
인격도 감정도 또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미숙한 나 역시 아이 앞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혹시나 부족하고 미숙한 내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아이에게 악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나의 부족함에 아이가 상처를 받는 날도 있을 것이다. 부족한 것이 많은 엄마는 저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자체를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상처와 사랑을 번갈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관계도 항상 완벽하지만은 않으니까.
부모가 늘 자식에게 최고의 안내자이자 최적의 조언자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헛된 희망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실패하는 날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세상살이는 여전히 어려운데, 내가 낳은 아이의 인생 설계를 내가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다.
도리어 완벽하지 않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고 나서 스스로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굵직한 인생 설계에 있어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아이가 있으니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내가 아이로 인해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아이가 부모 안에서 성장하듯, 부모도 아이를 통해 성장한다.
내가 엄마가 된 지금, 부모의 자격에 대한 생각은 바뀌었다. 성숙한 자들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성숙해질 마음의 준비가 된 자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