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엄마는 할 수 있어요

by 유이배

아이를 처음 낳아 품에 안는 순간, 뭉클해지는 감정과 함께 "엄마가 너한테 만큼은 뭐든지 다 해주도록 할게"라는 무한한 애정이 훅훅 생긴다. 하지만 보통의 부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 아이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뭐든지 다 해주지는 못한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원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마트에 있는 과자나 음료수 정도, 그보다 고가라고 해봐야 소방차 장난감 정도이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원하는 것은 넘쳐날 것이고 그 넘쳐나는 것을 모두 해줄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 중 한 명이 내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시려온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순간 일하는 엄마는 늘 곁에 있어줄 수도 없을 테고 아이의 모든 감정의 결들을 섬세하게 쓰다듬어줄 그릇 역시 아닌 그런 엄마다.



요즘 요가에 너무 치우쳐 있어 아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떼와 고집이 늘어나기도 해 간혹 짜증이 오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소소한 다툼이 지나간 뒤, 결국 잠이 든 아기의 얼굴과 발에 내 얼굴을 부비는 이 순간의 행복만큼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다.


밤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순간이 좋고, 아이를 재우려고 같이 누워 뒹굴거리며 '사랑해. 사랑해' 하며 통통한 뺨에 뽀뽀를 하는 순간도 좋다. 아이가 입을 '아' 벌리고 내가 주는 밥을 받아먹는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울고 떼를 쓰는데 못생겼다며 놀리는 나를 보고 더 약이 올라하는 모습도 귀엽다.


이 순간들이 우리 전체 인생의 찰나일 뿐일거라 생각하면 더더욱 소중한 시간이다.


부모로서의, 엄마로서의 여전히 취약한 나를 곱씹으며 반성할 때 늘 엄마로서의 시작점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은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가던 그날.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감정은 여전히 선명하다. 분명 아이를 낳은 것은 나지만, 엄마라는 단어가 나를 설명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완전한 무방비의 상태였다. 그런 내게 병원은 아이와 아이의 짐을 챙겨주며 '엄마로서의 삶을 향해 나아가라'는 선포를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의 어느 날, 혹여나 아이에게 바람이 들어갈까 아이를 꽁꽁 싸매면서도 그런 나 자신이 낯설어 보이던 그런 날이었다.


조리원 2주를 지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에도 여전히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떡해요.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떡해요'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내게 조리원 이모님이 한 말.


엄마는 다 해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엄마는.


그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그래, 나도 엄마야. 그리고 엄마라면 할 수 있어. 못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게 엄마지.


여전히 아직도 부족하고 서툴지만, 때때로 나를 다잡는 말이다.


"나는 엄마다. 강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해줄 수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를 위해 강하게 마음을 먹은 엄마라는 것. 그것만큼은 엄마인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큰 안심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