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임신하고 늘 다짐했던 것이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정서적으로는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하는 점이었다. 물질적인 것은 정서적인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지만, 정서적인 공허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육아서적에 나오는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것은 현실 육아에서 상당히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어른의 일 처리 과정을 온전히 따라오기가 힘든데, 어른의 세계에서는 그 과정을 시간에 맞춰 진행시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침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아이는 그 출근시간을 맞추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동차도 가지고 놀고 싶고 세수를 하다가도 장난을 치고 싶은데 바쁜 엄마가 그런 아이를 다정하게 기다린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가끔은 소리도 지르고 짜증도 내고 윽박도 지르는 전쟁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꼭 엄마는 출근길 내내 죄책감에 시달린다.
좀 더 다정하게 할걸.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러는 건데
내가 엄마로서 부족한 것은 아닐까.
토요일이면 나는 요가 자격증 클래스를 듣느라 하루 종일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를 못한다.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래도 부재한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토요일 밤에는 아이와 뒹굴거리며 뽀뽀도 하고 "엄마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라고 속삭여주고 노래도 같이 하다 잠이 든다. 그 토요일 밤에 아이에게 "꿀아, 내일 엄마랑 데이트할까?"라고 말해보았다. 데이트의 의미도 모르는 21개월짜리가 "네에!"라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심쿵!
하지만 막상 일요일이 되었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자 데이트 약속을 지킬까 말까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와의 약속인데 하며 유모차를 꺼내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는 외출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방방거렸는데, 문제는 아이가 유모차를 타지 않겠다고 떼를 쓴 것이었다. 비도 오는데 유모차를 타지 않으면 우산을 들고 아이를 안거나, 우산을 들고 아이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 상황이 내게는 버거웠다. "유모차를 타고 가야 한다"라고 몇 번 타일러봤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떼를 썼다.
난감해진 나는 아이를 꼭 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꿀아, 엄마는 너랑 데이트가 너무 하고 싶어. 빵도 먹으러 가고 싶고 커피도 마시러 가고 싶은데, 지금 비가 와서 네가 유모차를 타지 않으면 엄마가 갈 수가 없어. 유모차를 안 타면 집에 가야 해. 꿀이가 유모차를 타면 안 되니?
아이는 몇 번 더 "시러, 시러"라고 했지만, 강도는 약해졌다. 엄마 어깨에 기대어 조금 생각을 하더니 유모차를 타겠다고 한다.
떼를 쓰는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는 것보다 꼭 안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 꽤 효과가 있구나 싶었다.
하루는 아이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밤에 잠을 잘 못 잤는지 어깨와 목이 결리는 것 같았다. 낮에는 목이 잘 안 돌아가도 그럭저럭 지냈는데 밤에 잘 시간이 되니 엄청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고 30분째 칭얼거린 아기를 억지로 떼어내 엄마 품에 안았다.
오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에게 그날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우리 꿀이 오늘 달님에 토끼 이야기 선생님한테 들었지? 우리 달님 보러 갈까?"
그랬더니 울음을 멈추고 엄마에게 온다.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창밖 자동차들을 구경하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꿀아, 엄마는 세상에서 꿀이가 제일 좋아. 오늘 엄마랑 코자까?"
그렇게 엄마 아빠의 침실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꼭 일어서서 안아달라"고 강요(?)했던 아이가 서서히 침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뒹굴뒹굴거리다 엄마 볼에 뽀뽀도 하고 잠이 들었다.
아이는 간혹 알 수 없는 짜증을 내고 바쁜 순간에 꼭 떼를 쓴다. 그렇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고 아이가 스스로 달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나면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그런 여건이 안 되는 부모가 대다수라는 점은 항상 육아의 질을 떨어뜨린다. 다수의 엄마나 아빠 개인은 좋은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현실적인 여건들은 그 마음을 쉽게 무너뜨리고 만다.
아직은 육아 정책의 방향들이 질보다는 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만큼 양적인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정책을 짬에 있어서도 '아이의 시각'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육아는 아이가 행복한 방향으로 흘러야 하는 것이 정답이니까.
안타까운 것은 육아에 있어 개인의 의식 수준은 상당히 끌어올려졌지만 제도는 여전히 그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일상의 기반이 되는 기업의 제도들이 후진적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직장에서 엄마가 된 이후 고통받았던 이유는 이런 후진적 제도 속에 머물며 후진적 마인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후진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제 국가나 기업이 육아와 관련된 제도를 개선할 때 아이의 시선을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