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이는 감정을 배운다

by 유이배

내가 가르쳐준 적이 없는 동물 이름을 말하기 시작하고, 혼자 포도를 먹다 꼼지락 거리며 중얼거리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니 그게 "하나, 둘, 셋"하고 숫자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 자그마한 인간에게 놀라고 만다.


아직 22개월 밖에 안된 아이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 내 가늠을 넘어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가장 놀라고 신기했던 것은 아이가 감정을 명확하게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침대에서 놀다가 너무 신이 나서 잠자고 있던 아빠를 쳐버렸다. 22개월 작은 아이라고 하지만 자체적인 필터링이 없는 아기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자다가 벼락을 맞은 아빠는 덜컥 짜증을 냈다. 아이는 신이 난 자신에게 짜증을 낸 아빠를 보고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무안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가 얼른 다가가 아이를 달랬다.


꿀아, 아빠가 자다가 갑자기 아파서 놀라신 거야. 우리 아기도 놀랐지?

아이는 엄마에게 짜증이 섞인 응석을 부리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무안한 감정이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제야 아빠가 일어나


미안해, 꿀아. 아빠가 아파서 그랬어. 미안해. 우리 아기


라고 달래기 시작하자, 꾸역꾸역 참았던 서러움을 폭발시키며 '와앙' 하고 울어버렸다.


신생아 시절, 아기가 배냇 웃음을 짓는다고는 하지만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닌 근육의 움직임이라고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기는 만족/불만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조금 더 자라 언젠가부터 기쁨/슬픔 등의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나 할머니, 아빠, 할아버지 같은 보호자가 사라졌을 때, 슬퍼하고 함께 놀아줄 때 기뻐하는 정도의 감정 말이다.


나중에는 조금 더 복잡한 감정도 생겨났다. 칭찬을 받으면 행복해하고, 맛있는 것을 양보해야 할 때 싫다며 거부하는 등, 다양한 감정으로 소통이 됐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증조할아버지를 보고 돌아왔을 때, "하부지~"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이 귀여워 한참이나 쳐다본 적도 있다.


그러다 이제는 저런 무안함과 서러움 같은 고차원적 감정까지 배우다니, 점점 더 꽉 찬 아기의 세계 속 감정이 새삼 신기하다.

아기의 감정들이 자라는 만큼, 아기와 보호자의 결속력도 강해지는 것 같다. 점점 더 성장해가는 아기를 언젠가는 내가 마냥 품고 쓰다듬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어른과도 대등하게 대우해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겠지.


그때가 아직은 한참 후에 찾아왔으면 하는 이유는,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모습을 이렇게나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오늘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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