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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01. 2018

26.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가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는 때때로 아가가 너무 예쁘고, 그 예쁜 모습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에 둘째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은 100% 진심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어도, 80% 정도는 진심이었다. 아니, 100% 일 수 도 있다. 다만, 둘째를 갖게 되면 우리 형편에 두 아이 모두에게 충분히 좋은 것을 주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서 차마 둘째 욕심을 못내는 것이지 실제로는 아이는 둘 정도 같이 키우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아이를 하나만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대 무렵부터 확고했지만, 만약 경제적인 여건이 충족된다면 왜 굳이 하나이겠는가. 셋까지는 무리라도 둘은 충분히 낳아 기를 만 할텐데 말이다.


가끔 아이가 작은 등을 웅크리고 앉아 혼자 놀 때, 동생이 있으면 좋을텐데 싶은 순간도 있었다. 엄마로서 아가의 꼬물거리는 신생아 시절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심도 당연히 생긴다.


그렇지만, 가열차게 돈을 벌어야 하는 30대 부부에게 둘째는 사치에 가까웠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써야 하는데, 아이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존재이니까, 하나는 필수적으로 낳더라도 둘은 무모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 아가의 존재를 깨달은 것은 요가 지도자 자격증 시험 전날이었다. 몸 관리를 잘 했어야 했는데 감기 초기 증상이 있었다.


감기약을 먹고 정신 차려 공부를 해보자 싶다가 혹시나 해서 테스트기를 해봤다. 하면서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늘 생리 직전에 테스트기를 해보며 불안해 했지만, 매번 아니었다. 심지어 실제로 첫 아이를 낳고 1년도 안돼 자궁외임신이 된 적이 있었는데도 그 때도 테스트기는 아니라고 했었으니 말이다.


헉, 그런데 놀랍게도 두 줄이 나왔다.


당혹감이 가장 먼저였다.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고 나도 마음이 쉬이 진정이 안됐다.

어떡해?


첫 아이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허니문베이비였기에 예상보다 이른 소식이었음에도 나는 기뻤다. 어차피 낳을 아이, 빨리 낳으면 어때 싶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서 기르자 했었으니까.


그런데 둘째의 임신 소식은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마냥 기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니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 것인지. 내 인생이 얼마나 바뀌는 것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3일을 밤낮으로 울었다. 너무 막막했다. 나와 남편이 계획했던 미래들이 다 허물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부부는 나름 5년 뒤의 목표를 두고 서로의 시간과 돈을 꽤 쓰는 중이다. 꽤 많은 투자금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 둘째 임신은 전혀 계획에 없었다.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지금, 별 다른 사교육이 없음에도 내 월급의 절반이 아이에게 들어가버린다. 둘이면 두 배가 드는 걸까. 싶어 겁을 먹었다.


그렇게되면 지금의 월급을 포기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에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른다. 막막했다.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요즘은 나라에서 지원도 많이 해주는데 뭐, 애국해'라고 말하는데, 나라에서 해주는 지원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고, 나도 국가에서 펼치는 육아정책이 상당한 발전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의 기업 문화, 사람들의 인식은 멀었다.


예를 들어, 임산부 근로단축시간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게 가능한 회사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나라에서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해주는 제도야 큰 문제 없이 굴러갈테지만, 중간에 기업을 거치는 제도들은 대부분 암초를 만난 듯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회사 꼰대들은 대부분 "요즘 애 낳아 기르기 참 편해. 정치인들이 혜택 못줘서 안달이잖아"라고 참 쉽게 이야기 한다. '너네들 때문에 힘들다'라고 면전에다가 이야기 하고 싶다만, 나는 을병정이니까 참아야겠지.


그렇게 워킹맘에게는 더 없는 사치가 아닐 수 없는 둘째. 그런데 이 둘째는 참 유난했다. 첫 아이 때는 임신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두번째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자주 어지러웠고, 오한과 함께 몸살기운에 밤마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이불 속에서 바르르 떨었고, 늘 명치 쪽이 꽉 막힌 답답한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아침마다 9호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배려해 지하철 역까지는 차로 데려다주고 자리도 앉아서 가는 호사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뒤엉킨 지하철 좁은 공간의 여러 냄새들에 구역질이 나왔다.


급기야 하혈까지 해서 초기에 병원도 여러차례 들락거렸다.


의사 선생님은 살짝 유산 증상이 있다며 안정을 취하라고 하지만, 내 인생 어디에 안정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태교는 커녕,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조차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엊그제도 하혈이 있어 아침부터 병원을 찾았다. 그날은 벌써 한달 전부터 연차를 내놓은 날이었다. 원래 다른 일에 쓰려고 낸 연차이지만, 그냥 병원에 다녀왔다 쉬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걱정을 한아름 안고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아기는 잘 크고 있다'라며 처음으로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의 스트레스와 불평 불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제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쓰럽고 미안하고 대견했다. 그 심장소리로 나는 아이를 받아들였다.


"고마워, 버텨줘서. 고마워, 무사해서."


그리고 오늘은 용기를 내어 회사에 임산부 단축근로제도를 쓸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한다.


또 앞으로도 두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미리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보자고 다짐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가장 행복하게 기르고, 만족하며 살 수 있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자.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둘째의 심장소리를 듣자마자 그저 마음이 편안해졌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살다보면 우리는 언젠간 만날테고, 만난 이후에는 또 그렇게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갈테지. 욕심을 내고 아등바등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너와 내가 만나서 생기는 변화들 속에 유연하게 대처해보자. 싶어졌다.


조금 늦었지만 둘째야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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