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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Feb 06. 2019

27. 둘째는 오묘하다

둘째를 품게 된 지도 16주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16주면 전체 40주 임신 기간 중 절반을 향해 가는 시간이다. 아이는 얼굴 근육도 발달해 표정도 지을 수 있는 단계다. 그리고 성별도 알 수 있는 시점이다.

벌써 가물거리는 첫째 임신 때는 20주는 돼야 임산부 태가 났던 것 같은데 이미 13주 무렵부터 배도 제법 불렀다. 아니, 나는 심지어 그 무렵에 태동까지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아이보다 신경을 못쓰는 엄마다.


첫째 임신 때는 하루하루 아이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었다. 매일매일 태명을 불러주며 아이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별다른 태교를 안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아이 존재를 인식하고 교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태교였다.


그런데 둘째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날들이 더 많았다. 교감이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꾸 다른 이들에게 미루기도 한다. 첫 아이에게 "꿀동이한테 잘 자라고 이야기해줄까?"라고 말하면, 아이가 엄마 배로 와서 뽀뽀도 해주고 "꿀동아, 잘 자. 언제 나와?"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때마저도 나는 뱃속 둘째보다는 첫째가 귀여워 쓰다듬어 주곤 한다. 그런 내가 너무 무신경하다며 남편이 오히려 꿀동이를 쓰다듬어주고 말을 걸어주기도 한다.


그런 요즘 드는 생각은, 무조건 엄마가 우선이라는 무모한(?) 책임감이 컸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엄마 외에도 아가를 아껴주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고작 첫 아이 한 명이 늘어난 것뿐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낳아 기른 아직 작은 내 첫아기에게 의지하는 바가 컸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꿀이, 동생 나오면 많이 봐줄 거야?"라고 물어보면, 첫째에게 괜한 책임감을 씌우는 기분이라 미안해지기도 한다.

 

확실히 무조건 행복하고 반가웠던 첫째와 달리 이런저런 감정들이 많이 드는 둘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둘이라면, 사랑도 두 배가 될까

가장 큰 의문은 지금 내 모든 것인 첫째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생긴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둘째를 낳은 주변의 모든 이들은 둘째가 태어나는 즉시 또 한 번의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지만, 아직은 그 감정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래. 낳아봐야 알 일이다. 이미 한 번 엄마가 된 내게 첫째만큼이나 강렬한 설렘으로 다가오진 못하겠지만 조금은 능숙해져 여유를 갖고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책임감의 무게를 잘 알게 된 내가 둘째는 첫째만큼이나 온전한 기쁨과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온갖 감정이 뒤섞인 사이 불쑥 삐져나오는 부담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하튼, 지금의 내게 둘째란 존재는 묘할 밖이다. 낳으면 알겠지. 이 존재가 내게 줄 메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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