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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Nov 05. 2018

25. 아이를 미리 결론 내지 마세요


제가 바쁘단 핑계로 아이한테 책을 너무 많이 안 읽어줬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책을 펼쳐놓고 같이 읽어보자고 해도 아이가 영 흥미가 없어 보여요. 어떡하죠?


얼마 전 어린이집 상담 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즈음 내가 아이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으레 어린이집 상담이라 하면, 기관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 것이 당연할진대,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이 나와버렸다.

초보 엄마인 나로서는 보육 전문가이자 선배인 선생님에게 어떤 해법을 듣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크게 당황하지 않으시고 막힘없이 내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어머니, 어머니라서 하는 당연한 걱정 같아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남들 눈에는 아무런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것도 걱정을 하곤 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 제가 보기에 꿀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원에서 선생님들과 책을 읽는 시간도 있고 구연동화를 보는 시간도 있는데 굉장히 집중을 잘해요."


두 돌도 안된 아기가 산만하다고 한들, 그것 역시 "큰 문제는 아니에요"라고 선생님이 말해준다면 큰 위안이 될 것인데 집중을 잘하고 있다니 그 어린 아기의 사회생활이 한없이 대견해졌다. 한시름 놓은 엄마에게 선생님은 덧붙인다.


어머니, 그리고 아직 어리잖아요.
너무 미리부터 '책을 싫어한다'라고 결론 내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다'라고 결론을 내온 나의 습관들이 훅 지나간 것이다.

 

"꿀이는 겁이 많은 편이야." "꿀이는 장난기가 많아." "꿀이는 감정 표현이 풍부해."

 

그래도 기질에 대한 정의는 그나마 낫다. 아이의 기질에 맞게끔 내 행동을 교정할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려 노력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아이는 이걸 싫어해", "우리 아이는 이걸 더 좋아해" 같은 류의 결론은 선생님 말대로 아직은 너무 성급한 것이었다. 어쩌면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한계 짓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한 때 우리 아이는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고 느꼈다). 엄마와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했고, 클래식 방송이 나오면 지휘자를 보고 따라 하기도 했으니까. 어느 날에는 성악하듯 노래를 불러 가족들이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에 보낸 이후 체육 시간 아이의 표정이 밝은 모습만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는 몸으로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하나 봐"라고 생각하게 됐다. 몸으로 더 놀아주고, 밖에서 더 놀아주려 한 대신 음악에 노출시키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머니 사진만 보면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요, 제가 볼 때 꿀이는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춤추는 것, 노래 듣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하시는 걸 듣고, '맞아, 우리 아이는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내가 잊고 있었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

 

엄마가, 그것도 일하는 엄마가 아이의 교육을 유치원 프로그램 수준으로 체계적으로 해주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수시로 아이가 흥미 있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노출시켜 주려고 애쓰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그러는 동시에 '우리 아이는 이건 싫어해'라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려버리면, 엄마 역시도 그 활동에 있어 아이에게 다가감에 있어 다소간은 조심스러움이 생겨 버리게 된다.

참, 다시 독서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아이가 책에 그닥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최근에 선생님 말을 듣고 아이가 좋아하는 달님에 관한 책을 사서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싹 지워지게 됐다. 아이는 그림에 표현된 달님에 열광을 하고 달님이 나타나 '안녕'하면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면서 하루에 몇 번이고 그 책을 들고 와 엄마에게 "읽어줘", "읽어줘"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는 결코 책을 싫어하지 않았는데, 정말 큰 일 날 뻔한 엄마의 성급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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