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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26. 2018

타인은 날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직장 상사로 괴로운 이들을 위한 조언2>


도망치듯 나온 두 번째 직장 이후 나는 깊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를 불러주는 아무 직장이나 가버렸다. 회사의 규모는 다시 작아졌지만,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세 번째 직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부서로 발령을 내줘 제법 재미있게 일을 했었다.


그런데 가끔 현장에서 두 번째 직장 선배들을 만나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싸늘했다. 그들과 딱히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건너들은 말로는 결국 도망가버린 나를 후배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어리고 미숙하고 주변의 평가가 나를 정의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의 내가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 찍은 이유다.


‘조금 더 버텨볼 것을, 나는 어쩌자고 도망을 선택한 것일까’


아직 시작 단계인 내 커리어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듯 했다. 결국은 독서실에 박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기도 했다. 물론 공무원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금세 흐지부지 됐다. 이대로 인생이 주저앉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한없이 우울했다.


나는 다시 수시로 큰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인정할 수 없다는 싸늘한 눈빛을 극복하려면 그들이 무시하지 못할 번듯한 회사로 가야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겨우 4년차에 이직만 두 번인 나는 번번이 면접에서 “무슨 문제 있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내 인생, 내 커리어에서 무언가가 확실히 엇나가버렸다고 생각했던 순간이다.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져 일에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 시기,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너를 인정 못하겠단 그 사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기자로서 네가 존경하는 사람이냐고.”


순간 뒷골이 당겼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형편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부서가 달라 부딪힐 일은 자주 없었지만 그 역시 모욕적인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사람이었고, 간단한 것조차 배우기 귀찮아 후배들에게 미뤄버리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내게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이런 기사를 수 분 안에 쓰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정작 자신은 내 기사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실시간 검색어용 기사를 찍어내는 기자들을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를 내는 등, 뒤통수를 때리는 일도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가뜩이나 매번 소리 지르는 팀장 때문에 풀이 잔뜩 죽은 나는 그저 속으로 ‘나는 나중에 절대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했었다. 그에게 후배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일 뿐이었다.


“그러네. 그 사람 기자로서도 그렇지만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건덕지가 없어.”


형편없는 이의 평가에 내 스스로를 좌지우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인정'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실은 아니었다.


세 번째 직장에서 2년 쯤 성실히 일을 한 뒤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네번째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인정해주는 선배들을 만났다. 고성도 없었고 불필요하게 사람 피만 말리는 정치도, 강요된 야근도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선배들은 나를 더 성장시켜줬고, 필요한 순간에 더 높이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그 선배들을 백업하는 일은 언제나 기꺼이 하게 됐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는 선배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 선배는 후배의 성과를 앗아가지도 않고 비겁한 정치에 후배를 이용하지도 않으며 모든 후배에 공평하되 오로지 업무의 완성도로만 평가하는 이였다.


질이 좋지 않은 이들과 일을 해보았기에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기쁨의 가치 역시 제대로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모든 경험들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20대의 내게 30대 중반인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부적격한 누군가의 평가로 포장된 험담을 잘 구별해내렴. 내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면 그런 이들의 이야기들은 그저 흘려보내면 된단다. 커리어 안에서 나 자신을 정의하는데는 시간이 꽤 걸린단다. 특히 주니어 때에는 나를 서둘러 평가하기 보다는 하루 하루 닥친 과제들에 최선을 다 한다면 될 밖이란다. 간혹 형편없는 선배들은 그들만큼이나 형편없는 기준으로 서둘러 손가락질을 하기 바쁘지만 결국 최선을 다 한 하루의 가치들이 모여 금세 그들쯤은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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