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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27. 2018

아부를 해서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선배가 되었다. 후배들을 다루는 입장이 되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던 선배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비상식적인 선배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선배들보다 후배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난이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는 후배에게 칭찬을 하는 것은 쉬웠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에게 꾸중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후배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가 상충될 때는 선배로서 꽤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주니어 시절을 다시 산다면 이러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자연스러운 생각들을 조언으로 건네고 그 조언의 진심이 후배들에게 닿는 순간에는 선후배를 떠나 끈끈한 동료가 되기도 했다.


물론 늘 해피엔딩은 아니다. 한 번은 후배가 일을 너무나 나태하게 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일을 미루는 모습을 보고 혼을 낸 적이 있었다. 다음 날에는 당연히 업무의 질이 개선되길 기대했는데 그 후배는 업무는 여전히 비슷하게 처리해버리고, 인형 몇 개를 사들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선배 생각이 나서 사 왔어요.”라는 후배는 상냥한 미소와 예의 바른 태도를 갖추고 있었지만, 나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물론 내가 본인에게 싫은 소리를 했으니 불편해진 관계를 개선하려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혼낸 의도는 업무의 개선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잘 보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날부터 그 후배를 볼 때마다 '일보다는 잔머리로 조직생활을 해나가려는 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편견이길 바랐지만, 실제로도 그는 동료들에게 끝내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야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미숙했던 시절, 선배에게 아부를 해서라도 잘 보이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싫고 불편한 선배를 마주칠 때일수록 “선배 기사 감명 깊게 읽었어요. 역시 대단하세요”라는 속에 없는 말을 달고 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처세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런 불필요한 아부들은 내 수명을 하루 이틀 연장해줄지언정,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런 아부로 맺어진 관계는 늘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출입처에서 분투해야 하는 기자의 특성상, 소위 일 잘하는 선수들은 결국 서로를 알게 된다. 남들이 들여다보지 않는 구석 어딘가에서 마주치게 되고, 성과 경쟁(특종 경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또 만난다. 그렇게 일로 인해 서로를 인정하며 맺어진 관계들은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 도움을 주고 받게 된다. 아마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잘 하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관계야말로 진짜 영양가 있는 네트워크로 발전되기 마련이다. 


늦었지만 그날 그 후배에게, 또 선배 뒤를 쫓아다니며 아부를 해서라도 더 올라가고 싶었던 어리숙했던 20대의 내게 이제는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에서 너 자신을 인정받고 싶다면 일로 증명하면 된단다. 사사롭게 가까운 관계가 되더라도 결국 일이 서로 잘 되지 않으면 금세 무너지고 마는 관계가 직장 내의 관계야. 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과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업무적으로 감사하고 인간적으로 진심일 때만 행하렴. 좋은 선배일수록 네 입 발린 아부보다는 열의 있게 일하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이미 충분히 좋은 후배이자 동료란 것을 인정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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