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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28. 2018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에 있는걸까?

<연애의 실패를 거듭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


커리어 외에 20대 때 가장 치열하게 했던 고민 중 하나는 연애였다. (어쩌면 커리어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을지도....)


몇번의 연애를 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보면 연애란 것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한 사람에게 쏟은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무용해진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쓸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좀 더 먹으면서부터는 결국 무용해질 밖인 열과 성이라도 쏟을 만한 대상을 찾기가 힘겨워진다.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에 있는 걸까?
대체 살아는 있는 걸까?


늘 친구들과 홍대 바 한 구석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했던 말들. 그땐 막연하게 지구 어딘가에 가면 괜찮은 남자들이 희귀한 유니콘처럼 살아가고 있고, 그 유니콘들을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때 그런 대화를 나눴던 친구들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이 땅 어딘가에서 (유니콘과는 거리가 먼)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를 기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토록 갈구하던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냐고? 글쎄. 우리는 다들 어느 날은 투닥거리며 다투다가도 또 어떤 날엔 함께 소파에 앉아 낄낄거리는,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10년 전 나와 내 친구가 했던 고민들은 지금의 20대들도 하고 있을 것이다. "선배, 어차피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니에요? 도대체 선배는 왜 남편이랑 결혼한거에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결혼까지 한거에요?"라고 물어보는 이들이 제법 많다.


20대에게 결혼은 도무지 가능해보이지 않는 경건함과 생경함, 혹은 이해불가능한 불합리한 제도 그 사이 어디에 있는 듯 하다. '어떻게 남은 반백년의 삶을 한 사람과 보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어떤 개인에게 던질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결코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미스테리라도 질문하는 비장한 표정들이 후배들의 얼굴에 서려 있으니까.  


물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과연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것일까. 구시대적 유물에 불과한 것 아닐까. 지금 내 옆에 있는 남친은 딱히 믿음이 안가는데 시간이 흘러 저런 인간(?)과 결혼을 해야 할수도 있다니?! 뭐 대충 이런 마음이었달까. (물론 그 남친들도 나를 보며 같은 마음이었을게다)


정말로 결혼이란 인생의 중차대한 일이라,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실은 굉장히 신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괜찮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그 남자와 마침내 결혼에 골인한다는 것은 드라마 속 판타지에 불과하다. '괜찮은 남자'는 내가 '내게 괜찮음'의 기준을 알지 못하면 결코 알아볼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 대해 깊게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과연 나는 결혼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결혼을 할 때 내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에게 어떤 아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은 결혼을 해서 살면서도 꾸준히 해야하는 질문이지만, 결혼에 이르기 전에도 자신에게 치열하게 물어봐야만 한다.

 

후배들이나 아니 아직 미혼인 친구들조차 주변에 괜찮은 사람 소개해달라고 할 때마다 '어떤 남자가 괜찮은 남자인데?'라고 물어보면 답을 확실히 못한다. 막연하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거나, '왜 그런거 있잖아. 그냥 무난한 남자'라고 말한다. 오히려 '키는 좀 컸으면 좋겠고, 대기업을 꼭 다녔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주변에서  찾아보기에는 나을 지경이다.


또 이 막연함들은 실은 내가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에 튀어나오는 말일 수도 있다. 예컨대, 정말 너무나 위대하신 업적을 이루신 분이라 내가 존경은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가정은 나몰라라 팽개치고 오로지 본인의 일에만 골몰하는 남자라면? 그것도 나는 감수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을 존경할 수는 있을까? 이런 고민을 다각도로 해봐야 하는 것이다.


고민의 고민을 하면서 연애 역시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희미하게라도 답이 나온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 그렇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대목은 바로 이것.


결국 이것은 나를 아는 과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내게 괜찮은' 남자를 찾을 수가 있다. 그 과정도 없이 막연하게 '괜찮은 남자'는 기어코 만났다하더라도 연애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 중에 고민을 안겨주기 마련이니까.


"괜찮은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일단 내게 괜찮은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그러니까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돼. 이건 시간이 꽤 필요하고, 연애도 여러번 해보면서 알 수 있는 거라 알고 싶다고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연애를 하면서도 줄곧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들여다보려고 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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