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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Jan 08. 2019

직장 내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스스로 직장 부적응자인 것 같다는 사람들을 위한 '실.없.는' 조언>

10년 가까이 같은 업에 종사하다보니 돌이켜 아쉬운 점은 직장과 직업을 분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직장이란 공간은 말 그대로 다양한 인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집단이다. 직업은 내가 밥벌이를 위해 종사하는 업이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내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로 오해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주로 사람 스트레스다.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고 성취감도 들지만 지금 속한 조직 내의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면, 조금은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기대를 버려라. 대신 내가 얻어낼 것에 좀 더 집중하는 어떻게 보면, 영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구태여 나서서 적을 만들 필요도 없고 집단을 꾸려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구성원들이 바뀌는 곳이 직장인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인간관계에서 내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굳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지나치게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당장의 삶은 편할지언정, 누군가의 라인으로 오해받은 것이 나중에는 짐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두루두루 무난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직장생활을 스트레스 없이 유지하는 것에는 도움이 된다.


직장 내 인간관계가 얼마나 허무하냐면, 더 없는 절친이었다 할지라도 회사를 옮기고 나면 관계가 예전같이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누군가를 함께 헐뜯으며 동지애를 다진 관계일 수록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장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관계에서 한 발 떨어지라는 말이 마냥 말 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공격적으로 날을 세우는데, 둥글고 여유롭게 대응하며 남의 일인양 대처한다는 것은 인간의 경지 바깥에 존재하는 일 같이 느껴지는 날도 많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바둥거리며 ‘대체 왜 저런 인간이 있을까’ 하며 열을 낼 필요가 없다. 그저 그러려니 ‘쟤 또 저러네’ 하는 마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넘어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참을성이 없었던 나는 내게 날을 세운 이들에게 늘 뾰족하게 굴었고, 누구 하나 이길 때까지 물어 뜯어보기도 해보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내기보단 결국 나 역시도 제3자의 눈에는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 '감정적인 사람' 이라는 인상만 남기게 될 뿐이다. 정치적으로 내가 그를 이겼다해도 실은 이기는 것이 아닌게 돼버리는 경우도 많다.


더 허무한 것은 그렇게 날을 세우고 싸운 이들이 불과 1년도 안돼 이직을 하거나 휴직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보통 회사에서 뾰족하게 구는 이들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더 빨리 떠나기도 한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거의 사라진 시대다. 능력이 있다면 언제고 다른 곳으로 이직할 기회가 열려 있다. 그러니 더더욱 지금 속한 조직 안에서의 인간관계에 바둥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한 칸 한 칸 올라갈 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니 서로의 적도 생기게 되고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일을 수행해야 할 때가 많겠지만, 감정적으로 달아오를 때마다 지금 내 위치가 내 커리어 전체에서 어디쯤 되는지를 한 번 생각해하며 숨고르기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열을 내면 내가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도 상기해보면서 냉정을 찾아가는 지혜. 20대의 내게도 그런 지혜가 있었다면 지금 삶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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