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으로 가는 길
두려움으로 진정이 잘 되지 않았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허우적거렸다. 어서 빨리 무통을 맞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진통제라도 맞아야겠다 했는데 마침 들어온 간호사가 자궁이 4cm가 열렸다고 말했다. 이내 나는 좁디좁은 분만대기실에서 가족분만실로 옮겨졌다. 간호사의 지시대로 새우등을 하고 구부려있으니 마취과 의사분이 곧 오셨다. 그분은 끙끙 앓는 내 등에 무통 주사를 놓았다. 나는 그분의 얼굴 조차 볼 수 없었다. 등을 구부린 채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느낌이 등을 스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멀쩡해졌다. 진통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고 글로만 봤던 '무통 천국'이었다. 어떤 후기에는 무통빨이 안 받는 사람도 있다 했는데 다행히 나는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대화도 나누고 여유를 찾았다. 그제야 둘러본 가족 분만실은 넓고 깨끗하고 아늑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가끔 간호사 분이 오셔서 자궁의 열린 정도를 체크하고 갔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점심을 지나 저녁 시간이었다. 밖으로는 첫눈이 내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창 밖을 볼 수는 없었다. 무통을 맞게 되면 하반신이 마취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남편에게 나가서 밥 먹고 오라고 했다. 주저하는 남편에게 “언제 태어날지 모르고 내일 새벽일 수도 있으니 뭐라도 먹고 와”라며 내보내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당연히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수액을 꽂고있어 배고프거나 목 마르진 않았다.
그러다 밤 10시 이후부터 무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진통을 전혀 못 느꼈지만 그래프 수치를 보고 눈치껏 힘을 주곤 했다. 여유롭던 간호사의 표정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와 무통을 빼자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이후엔 힘주기 연습이 시작됐다. 아직도 남아있는 무통 탓인지 힘을 준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 해 보았다.
11시가 넘자 분만대가 들어섰다. 어느 순간 힘을 줄 때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옳지, 그렇게. 이제 감을 잡은 것 같네요”라고 하셔서 힘을 주라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내보내는 힘을 줬다. 순간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어깨도 나왔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고? 첫 느낌이 그러했다. 통증은 그 순간 까지도 없었다. 낳았다는 증거는 머리가 빠져나오고 어깨가 빠져나온 생생한 느낌이 전부였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내가 낳은 나의 아기는 간호사들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나보다 더 힘주느라 땀까지 흘려댄 남편은 내 머리맡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얼른 아기한테 가봐.”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남편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자신의 아들로 향했다. 그리고 곧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후 남편이 탯줄을 잘랐는데, 누워있는 나는 그 광경을 보진 못했다.
그 병원은 캥거루 케어를 해주는 병원이었다. 후처치를 마친 산모에게 역시 후처치를 마친 아기가 찾아왔다. 가슴팍에 올려진 아기를 느꼈다. 순간 왜인지 모르게 “괜찮아. 우리 아기”라는 말이 자꾸만 나왔다. 뱃속에 품고 있던 이 작디작은 존재를 마침내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기분이 묘했다.
의료진은 모두 나가고 남편과 나, 아기는 캥거루 케어의 아늑한 조명 아래 가족으로의 첫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신생아는 눈을 뜨고 고개까지 들어 속삭이는 엄마를 바라봤다. 눈물이 폭풍우처럼 쏟아질 것 같았는데 그렇기보다 그저 신기했다. 정말 내가 낳은 건가?
나의 몸을 빠져나온 이 작은 생명체의 꿈틀거림이 그저 신비로웠다. 나의 아기. 여하튼 나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캥거루 케어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자 아기는 신생아실로 향했고 나는 입원실로 갔다. 1인실을 쓰지 않아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인실 중에 보호자 출입이 안 되는 곳으로 입원했기 때문이다. 비싼 1인실 비용에 거부감이 들어서 한 선택인데, 막상 병실에 와서 후회했다.
산모들의 블로그 후기에는 ‘호텔만큼 좋은 1인실’ 내지는 ‘남들 방해를 받지 않고 푹 쉴 수 있는 1인실’의 장점들만 나열되어 있었는데 나는 호텔 같은 시설은 불필요했고 불과 2-3일이니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이 굳이 필요하다 여겨지진 않아 다인실을 택했다. 다만 산모가 아닌 다른 보호자들의 잦은 방문은 성가실 것 같아 보호자가 낮에만 출입되는 병실을 선택했다. 1인실은 1박에 30~40만 원을 훌쩍 넘는데 다인실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다인실을 쓰면 아이를 낳자마자 우두커니 혼자되는 느낌이라고 미리 알려줬다면 1인 병실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는 내 인생 최대의 이벤트가 벌어진 날인데, 어느샌가 나는 혼자 남겨진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때 내 머리맡 전화벨이 울렸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