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베일을 벗다(1)

자연주의 출산으로 가는 길

by 유이배

예정일이 지나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막상 내일 아기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떨렸다. 뱃속에 열 달을 품은 아기의 얼굴을 마침내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온몸이 떨렸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울컥했고, 친절한 간호사 분께서 같이 눈물을 글썽이며 응원해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도 순간 울컥해 몰래 눈물을 쓱 닦았다고 한다.


출산 전엔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부모 되기 D-1인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집까지 20분여 거리를 함께 걸어갔다. '최후의 만찬'으로는 남편이 튀겨준 돈가스를 택했다.


그날 밤은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거의 뜬눈으로 지새운 밤을 지나 새벽 일찍 시리얼을 먹었고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 남편에게 부탁했더니 대용량으로 사다 줬다. 출산하면서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그 큰 초코파이 박스를 출산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제 나는 드디어 출산의 베일을 벗게 된다. 우리 엄마도, 우리 엄마의 엄마도, 모두 경험했지만 막상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출산의 관문에 마침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 지난 몇 달 동안 수백 번은 상상했던 분만실 앞에 섰다. 열 달 동안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병원 건물 지하에 존재해 온 분만실이다. 이곳에 내가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 순간까지 난 가진통이란 것도 경험하지 못했다.

분만실 벨을 눌렀고, 누군가가 나와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바로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내내 함께 있을 줄로만 알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헤어짐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나.


남편은 밖에 있고 나는 분만 대기실이 있는 자동문 안으로 향했다.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탈의를 하고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항생제 주사를 꽂았다. 이후 간단한 설명을 들었는데 너무 떨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이때부터 촉진제도 맞기 시작했을 것이다.


30분 남짓 지나 남편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진통은 시작되지 않았다. 몇 차례의 내진과 "너무 아프시면 진통제는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무통은 자궁이 4cm 이상 열려야 드릴 수 있어요"라는 분만실 간호사 분의 설명이 있었다.


우리는 커튼으로만 구분되어 있는 좁은 공간에서 곧 다가올 진통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간혹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렸고, 가족 분만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아파?"

"아니, 아직 안 아파. 생리통처럼 살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참을만한 것 같아"

"담당 의사 선생님은 언제 오는 걸까?

"그러게"


또 좀 시간이 지나면,


"아파?"

"아직 참을만해. 진통제는 안 맞는 게 낫겠지?"

"글쎄"


뭐, 이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어느 순간부터 아픔의 강도가 커져갔다. 그래도 진통제도 맞고 무통도 맞으면 뭔가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진통제는 맞지 말고 버텨보자 했다.


내진의 느낌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출산 후기글에 묘사된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내진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마다 무통을 맞을 때가 왔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리통 중 가장 강한 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아 좀 아프네. 아파”라며 끙끙거렸고 남편은 손을 잡아줬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비명을 지를 정도의 아픔은 아니었지만, 묵직하고 불편한 느낌이 복부 쪽에 몇 차례 찾아왔다 사라졌다.


사실 신체적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 시기 진통은 참을 만했다. 다만 나는 무서웠다. 앞으로 닥쳐올 고통의 크기가 대체 어느 정도일지 너무 두려웠다.


“아직 4cm 아닌가요?”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오로지 4cm에만 집착했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자궁의 4cm 열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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