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님
징 소리가 천천히 세 번 울렸다. 여운이 채 가시기 전 교수님이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셨다. 객석에서 환영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분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준비된 소파에 앉아 웃음 띤 얼굴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대 스크린에는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 ‘100세 철학자의 인생 이야기’라는 문구와 의자에 팔을 살짝 얹고 미소 짓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존경과 사랑을 받는 철학자, 거목(巨木) 김형석 교수의 강연이었다.
학창 시절, 연세대 교수이신 그분의 책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었다. 지금도 신문에서 교수님의 칼럼을 통해 시대를 보는 시각의 균형을 잡고 있고 몇 달 전 신간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이야기’도 감명 깊었다. 마침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강의에 교수님이 나오신다기에 참가신청을 했었다. 혹시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송이 될까 염려도 하면서. 사진 속의 모습과 똑같이 정정하고 선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지금도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사회에 공헌하시는 영원한 현역. 한 세기의 무게를 견디며 바르게 살아오신 그의 강의는 어디서도 배우기 힘든 인생공부가 되리라 기대하면서 수첩을 꺼냈다.
철학자이며 수필가인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역사의식과 국제적인 안목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100세 원로는 살아보니 계란 노른자같이 알차고 행복한 나이는 육십에서 팔십 세였단다. 삼십 세까지는 나를 위해 교육받고, 육십 세까지는 가정과 직장을 위해 사느라 바쁘고, 육십 세 이후가 되어야 철이 들기 시작해 사회에 보람을 주고 열매 맺는 단계라고 했다.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일과 공부를 계속하고 취미생활, 특히 독서를 통한 넓은 의미의 공부를 강조하셨다.
이 강연을 통한 깨달음은 내 안목이 이기적이고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저서에서도 칼 힐티의 말을 인용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잘 사는 집이라고 해도 자녀를 기를 때 돈 벌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 밖에 주지 못한다면, 그 가정에서는 진정한 인재들이 자라날 수 없다는 것. 비록 가난한 가정이라도 이웃을 위해 걱정하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마음 쓰면서 살아가도록 가르친다면, 그 가정에서는 반드시 유용한 인물이 나타난다고. 훌륭한 가정은 이웃과 사회를 걱정하는 사회의식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셨다.
부모의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특히 엄마의 교육관이 가정과 나라의 근간이 됨을 다시금 깨달으며 무지와 이기적인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사회의식과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랑하는 자녀에게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은 밥과 맹목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인격적 성장과 인간적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 정신적, 영적으로 키워야 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아간다.
교수님은 평안도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3.1 운동, 6.25 전쟁 등 힘든 역사적인 일들을 겪었다. 일제 강점기에 중학생이 되니 교수님의 아버지는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며 살면 국가와 민족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단다. 역시 거목이란 온갖 고난을 이겨낸 후에야 높게 보이는 것인가. 그분은 나라의 독립과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는 것과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셨을 것이다. 큰 뜻을 품었기에 지금 자신의 일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 고언과 충언을 하며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하고 계시리라.
교수님이 독서를 강조하시니 몇 달 전 읽은 책이 생각났다. 이제는 평균 수명이 팔십 세가 넘어간다. 그중 ‘100세까지의 독서술’ 은 일본의 교수이자 평론가인 쓰노 가이타로가 쓴 노년 독서에 관한 책이다. 청년기와 장년기의 독서를 돌아보며 심신의 체력이 저하되는 노년기(칠십 세 이후)에 접어들어 책과 사귀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글이었다. 노안과 쇠약해져 가는 신체를 이끌고서 책과 마주하는 독서사의 최전선을 다루었다. 노년의 독서는 이제 이 책을 다시 읽기 어렵고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를 되뇌는 비장함이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를 돌아보고 죽음을 앞둔 나이까지도 책을 가까이하며 정신적으로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의 내가 뒤늦게 핀 가을장미 같을지라도 희망을 갖고 또 시작해 볼 용기를 갖게 해 주었으니까.
신체는 이십 대 중반부터는 늙어가지만 정서와 정신력은 사람마다 다르고 육십에서 칠십 세까지 성장이 가능하단다. 오십 세 이후부터 기억력은 감퇴되나 사고력은 그때부터 잘 관리하면 구십 세 까지도 올라간다 했다. 교수님은 몸이 약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꾸준한 수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한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셨다. 육십 세 이후에는 스스로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며 독서를 통해 문화가 성장해야 하고 문화의 태양 구실을 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백 년이상 독서를 한 나라들이라 했다. 우리나라는 뛰어난 한글이 있어 세계 문화권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교수님을 보면서 상록수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이 오면 더욱 진가를 드러내는 소나무와 잣나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연상되었다. 세한도는 추사가 오십구 세에 제주도 유배 생활할 때에 지위와 권력을 잃었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경세문편’이란 귀한 책을 가져다 전해 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선비정신이 드러난 스산함과 처연함이 짙게 배인 문인화로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어려운 지경이 되어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깊은 뜻을 가진 그림이었다. 힘든 시기에 나라의 앞날을 위해 중심을 잡고 원로의 역할을 해주시기에 교수님의 존재감이 송백(松柏) 같은 거목으로 다가왔다.
교수님은 긴 세월 자신의 철학을 통해 고독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성숙의 길을 몸소 보여주고 계시다. 또한 겸손한 신앙인으로서 인생의 짐은 인간적인 성실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면이 있기에 경건이 필요함도 보여주고 계셨으리라. 백 년을 살아온 지혜를 아낌없이 전해주는 열정의 강연, 이제 다시 뵙고 귀한 강연을 듣기는 쉽지 않겠다. 진정한 애국자이신 교수님, 그 거목의 그늘 아래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도록 건강을 빌었다. 강연을 마치고 일어서는 교수님을 향한 존경의 박수 소리가 더없이 우렁찼다. 강연장을 오래도록 메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