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엄마의 방

by 가을장미

논현동 가구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신혼집에 들어갈 장롱을 보느라 엄마와 벌써 몇 곳의 매장을 들렀기에 다리도 아파왔다. 이젠 마지막이라 마음먹고 들어간 가구점에는 화사한 조명을 받은 멋진 디자인의 가구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먼저 안방 분위기를 좌우할 장롱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윗부분에 난초 문양이 새겨진 아담한 일곱 자 장롱이 마음에 들었다. 제일 덩치 큰 장롱이 정해지자 나지막한 화장대와 책장, 정사각형의 식탁은 점원이 권하는 대로 어렵지 않게 선택했다. 갈색의 수수한 가구들로 채워진 5층 꼭대기 아파트에서 나의 결혼생활은 시작됐다. 그러나 그땐 중요한 그 무엇이 빠진 것을 알지 못했으니.

이듬해 엄마가 되었다. 우선순위는 남편에서 연약한 생명체인 아기에게로 바뀌었다. 위대한 모성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듯했고 난 아이가 사랑스럽기보단 두려움과 책임감만이 앞섰다. 시간이 흐르자 어설픈 초보 엄마에서 점차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에 숙달되어갔지만 친정 엄마와 애써 골랐던 가구는 아이들의 보행기 바퀴와 장난감에 파이고 크레용 낙서 자국이 더해졌다. 특히 장롱엔 아이들의 흔적이 차곡차곡 늘어갔다. 해마다 나무에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듯.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의 십여 년은 내 생활이 없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모든 것을 두 아이에게 맞추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먹이고 입히는 데만도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살찌우는 데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자유롭게 키운다면서 방임하고 도서관 나들이도 힘들기만 했다. 그저 엄마란 호칭으로 만족하며 결혼과 함께 아이들을 통해 내 꿈을 이루려 했을 뿐. 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내 인생에 회의가 드는 순간이 왔다.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도 하면서 수고했지만 유독 나만 작은 책상 하나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몰랐고 불편함도 못 느꼈으니 정말 나 자신을 잊고 엄마와 생활인으로만 열심히 살았다. 방향도 모른 채 무작정 달리기만 한 시간들. 속상했다. 나를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우선한 내 삶의 결론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전적인 내 책임이었다. 내가 나를 방치했으니까.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었음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처음부터 거슬러보며 찾아야만 했다.

몇 년 전 직장 생활할 때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맞벌이하는 딸을 위해 손녀를 돌보았다. 어느 날 공부방에 들어서니 벽지부터 책상과 침대 그리고 이불까지도 모두 분홍색으로 공주님 방같이 새로 꾸며놓았다. 그것은 손녀를 위한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통 큰 초등학교 입학 선물이었다. 동화책이 정갈하게 꽂혀 있고 초등학교 생활을 응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담뿍 담긴 방, 예쁜 그곳에서 소녀와 나는 동화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우리 딸에게 이런 방을 꾸며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자리했지만. 할머니는 암으로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손녀는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신혼 때로 돌아간다면 내가 학창 시절에 쓰던 책상을 가져오리라. 학생 때는 너무도 익숙했기에 지겨웠던 것을. 그래서 신혼 가구를 살 때도 책상은 안중에도 없었나 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방의 공간은 점차 줄고 내 것이 들어갈 틈새가 없을지라도 식탁을 다시 내 공간으로 만들리라. 좁은 그곳에서라도 가계부만 정리할 것이 아니라 일기장과 책을 두세 권 놓아두고 틈틈이 보리다. 공책에 나의 맘을 담은 글을 써보면서.

지금은 거실 모퉁이에 나를 위한 작은 책상과 노트북을 마련했다. 무려 삼십여 년의 결혼생활이 흐른 뒤였다. 왜 나 자신을 그렇게 돌보지 않았을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겉모습을 꾸미는 화장대, 식욕을 위한 식탁에만 신경을 썼을 뿐. 내면의 성숙을 생각하는 책상이 놓인 공간이 없는 삶,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과 생각이 없는 그런 생활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후기 인상파 화가인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소박한 그의 방을 보여주는 그림엔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무 침대가 오른쪽 벽에 붙어 놓여있다. 그 벽에 걸린 네댓 개의 그림은 아마도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노란 해바라기가 아닐까. 정면엔 초록색 창틀의 창문이 보이고 침대 옆에는 나무 의자 두 개가 보인다. 원목의 향이 나는 듯 의자들. 그리고 의자 사이 왼쪽에는 자그마한 책상이 놓여있다. 수건과 옷가지가 걸려있는 초라한 이 작은 방, 책상에 앉아 평생 영혼의 동반자이고 후원자인 동생 테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으리라. 아무도 그림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았어도.

침대와 책상만의 단조로운 방, 초록과 푸른 바닥의 색채들은 고독하나 열정적인 고흐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방에서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웠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그러나 이곳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그만의 아름다운 색으로. 그의 화풍은 점차 고흐만의 아름다운 노랑과 파란색으로, 지금도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하게 그만의 그림세계를 모색하는 사색의 기록을 했기에 가능했으리라.

요즘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초라하지만 작은 내 공간을 찾았다. 내 책상이 있는 이 풍경 속에서 엄마와 작가로 오래 머무르고 싶다. 고전을 읽으며 시공을 초월한 영원의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의 허기를 조금씩 채워가면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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