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문을 열었다. 현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많은 신발들. 낡은 가죽과 고무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잠깐 망설임 끝에 고른 것은 원피스에 맞춘 샌들이었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 하지 않았던가. 낮은 통굽에 부드러운 가죽, 몇 해 신어 편하기도 했으니까. 땀이 배는 운동화보다는 시원하고 간편해야지. 그러나 지하철을 환승하느라 계단을 오르내리고 어깨에 맨 배낭의 무게까지 더해져 박물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발바닥이 아파왔다. 잘못된 선택일 줄이야.
얼마 전 신문에서 ‘이건희 특별전’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고인의 생전 수집품인 주요 문화재와 미술품 기증 명품전이 예약 하루 만에 한 달 분량이 매진됐단다. 코로나 시국에도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보고 싶은 마음이 더했다. 삼성이란 기업을 세계 일류로 키운 고인은 재력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도 뛰어났기에 사람들은 모처럼의 볼거리를 기다렸으리라. 문외한인 난 뒤늦게서야 소중한 기회를 놓쳤구나 씁쓸했다.
늦었지만 박물관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했다. 다양한 전시를 소개하는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요즘같이 덥고 변이 코로나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려운 시국엔 박물관만 한 나들이가 없을 듯. 모처럼 날을 잡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박물관 출입문을 들어서니 탁 트인 환한 공간에 관람자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정면엔 거북이 등 위에 세워진 삼국시대의 비석이 있었고 3층까지 닿을 듯한 10층 석탑도 보였다. 역사가 새겨진 작품들을 보면서 설렜다. 마음 같아서는 두루 보고 싶었지만 무리였기에 전시 안내문을 보며 한국 전통 서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2층 서화작품관으로 향했다.
큰 마음먹어야 올 수 있는 곳이라 찬찬히 관람하고 싶었지만 발바닥이 힘들었다. 한두 전시실을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아 쉬었다. 새삼 운동화가 생각났다. 오래된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조명이 어두워 잘 볼 수 없어 아쉬웠으나 중요한 그림들은 대형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두었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니 박물관과 친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시원하고 조용한 실내는 여름 나기에도 최상이었다. 잠시 소파에 앉아 쉬다 보니 바로 옆이 ‘이건희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는 전시관이었다. 예약시간에 맞춰온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러움을 뒤로하고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기증관이 많았다. 평생 모은 값비싼 기증품들의 진가를 알리고 공유하고자 사회에 환원한 것이리라. 사람은 사라져도 수집했던 예술품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느끼게 했다. 꽉 쥐었던 손을 펴고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일진대 그동안 고생하면서 수집한 것들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그 풍성한 마음이 부러웠다.
집에 와 신발장을 열었다. 샌들을 넣으며 보니 버리지 못한 신발들이 자리를 거의 차지하고 있다. 이 신발장에 우리 가족의 역사가 보였다. 그중 딸의 굽 높은 구두가 보인다. 벌써 십여 년 전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 샀던 검은색 구두였다. 면접을 앞두고 검은색 정작 투피스와 함께 장만해서 기분 좋게 합격을 안겨줬던 추억의 구두였으나 정작 높은 굽 때문에 처음 몇 번 신고는 구석에 처박혀 있다. 자신의 소임은 다한 양. 보기엔 멋지나 일상생활에서는 너무도 불편한 신발이었고 불편한 신은 멀리할 수밖에 없는 듯.
옆에는 고무신이 다소곳하게 있다. 권사 취임식날 연두색 한복과 같이 신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교회, 주일 설교시간에 쏟아지는 잠에 졸기도 했었다. 이 고무신을 신고 화려하게 권사 취임식을 할 때 내 믿음은 형편없었지만 왠지 직분이 나를 세워주는 듯하여 기쁘기만 했었다. 엄마의 칠순에 형제들이 모여 한복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을 때 그때도 함께 했었지만 그런 가족사진도 과시용이었음을. 거실을 장식했던 그 사진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곤 부담스러워 가져 가려는 자식은 없었으니.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많이 걸어야 했기에 신발에 과감하게 돈을 썼다. 발이 편해야 일의 능률도 오르니까. 내 수입의 많은 부분을 비싼 신발에 썼지만 제일 편한 신발은 효도신발로 디자인은 영 맘에 들진 않았다. 이십여 년 전에는 컴포트화의 종류가 많지 않았으니. 동료 교사는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아주는 엄마들이 너무 고맙더라고. 그런 사려 깊은 엄마들이 가끔 있었다. 그녀들의 자녀는 반듯했고 가정 분위기는 따뜻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였다. 키가 쑥쑥 커갔고 신발을 험하게 신어 자주 사주어야 했다. 빠듯한 살림에 불평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아이가 건강해서 그런 것이니 아까워하고 불평하면 안 된다고. 몰랐다. 부지런히 다니고 운동한다는 건강한 신호였음을. 엄마의 지혜로운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건강한 아이를 주심에 감사했다. 그래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만 해라. 뇌출혈로 십 년째 요양병원에서 거동을 못하는 시어머니의 하얀 실내화. 그녀는 이제 이것마저도 필요 없다. 신발이란 걸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었으니까.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나는 어쩌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멋진 왕자를 만나는 공주의 이야기와 행복한 결말을 꿈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죽구두도 운동화도 발에 길이 들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유리구두를 신고 춤을 춘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동화이기에 가능한 일일뿐. 이젠 그런 꿈에서는 깼다. 구두는 이상이지만 운동화는 현실이라는 누구의 말처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홈쇼핑의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쇼호스트가 맛깔나게 설명을 하면서 마치 금방 매진될 듯이 호들갑스럽다. 디자인이며 가격도 괜찮아 보인다. 구매 버튼을 누르고 싶지만 꾹 참는다. 경험상 신발은 직접 신어보고 까다롭게 골라야 했으니까. 마음먹은 대로 데려다주고 내가 간 곳을 다 알고 있는 신발. 이것만큼 주인의 발과 딱 맞아야만 되는 물건이 있을까. 다른 것은 서로 빌려주고 빌려 쓸 수 있으나 신발만은 그러기 힘들다. 아무리 값비싼 신발이라 하더라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신을 수도 없으니까. 이젠 시간이 허락되는 한 내게 딱 맞는 신발을 신고 나의 길을 열심히 걸어보리라.
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