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낮시간을 피해 요즈음 밤 산책을 한다. 하루 종일 틀어놓은 전열기구들로 후텁지근해진 집안 공기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지니까. 가로등이 켜진 자그마한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밤하늘도 쳐다보고, 하루를 정리하는 고즈넉한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화단을 지날 때면 코끝에는 분꽃 향기도 전해온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차들로 빽빽하던 주차장에 빈 공간이 눈에 뜨인다. 아마도 여름휴가를 떠난 집들이 많아서 이리라. 그러자 문득 몇 년 전 나의 길고도 길었던 여름휴가가 떠올랐다.
직장생활이 이십여 년째 되어가고 있던 때였다. 일은 익숙했지만 여름엔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특히 한낮의 보도블록은 달궈진 화덕처럼 열기가 올라왔고 온몸은 금세 땀으로 젖었으니까. 여름휴가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었다. 게다가 허리까지 아파와 물리치료를 하며 견디고 있었으나 이번엔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휴가 날짜만 고대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던 어느 날 아침, 마침내 동네 의사가 경고했던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당황한 나를 싣고 남편은 잠실에 있는 한방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이동 침대로 옮겨졌다. 간단한 상담 후 곧바로 입원이 결정되었고 양한방을 겸하는 병원이라 모든 검사와 절차가 신속했다. MRI 결과를 본 담당 의사는 허리 디스크 1, 2번에 이상이 있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형적인 디스크의 경우가 아니라며 밭일을 했냐면서 웃었다. 환자복을 입고 이른 아침부터 빡빡한 스케줄대로 치료과정이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몇 번의 장침을 맞고 나니 허리가 조금씩 펴지고 천천히 걷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제야 가족과 직장일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일하느라 바빠야 할 내가 이렇게 누워있다니…
지금도 장침은 두렵다. 치료실 침대에 엎드려 차례대로 대기하고 있으면 옆방에서부터 환자들의 다양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의사 선생님도 조금 아프다 말했지만 엄청난 길이의 굵은 침은 척추에 못을 박는 듯했고 통증은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속으로 삭이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잘 참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나니 계속되는 진료에서도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정말 의술의 세계는 신기했다. 그 침 덕분인지 수술도 하지 않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수치료 또한 기억에 남아있다. 그것은 인체의 근육 섬유질과 뼈 구조를 바탕으로 손을 이용한 물리치료의 한 방법이란다. 사람의 손이 최고였다. 오십 분 정도 몸 상태에 맞춰서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고도의 힘든 과정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받았던 마사지처럼 난 마음이 편치 않고 어색했다. 환자의 아픈 곳을 낫게 하기 위해 정작 그 젊은 치료사들은 얼마나 온 힘을 들여야 하는지 느껴졌으니까. 시간과 정성에 비례하는 너무도 정직한 일이었다.
6인실이었기에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을 만났다. 환자복을 입었지만 멋쟁이였던 아줌마는 억울하단다. 십여 년 넘게 수영을 했고 몸 관리를 했건만 다리에 이상이 생겨 수술 후 재발되어 이곳으로 왔으니까. 또 다른 환자는 백화점에서 빗물에 미끄러져 큰 사고로 이어졌다. 공교롭게 그때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그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아 가끔 입원 치료를 병행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만성 디스크로 이 병원 단골이었다. 그녀는 간병인을 자처하며 병실에 소소한 일들에 도움을 주고 분위기를 밝게 했다. 그분이 퇴원할 때는 치킨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면서.
입원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의사는 재발이 우려되므로 조심해야 한다면서 한 달 정도 입원을 권했다. 당혹스러웠지만 좋았다. 병원에서 해주는 밥 먹고 오롯이 내 몸만 생각하면 되니까. 뉴스에서는 몇십 년 만의 무더위라 했지만 마치 병원으로 휴가를 온 듯했다. 직장일도 내가 없으면 안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돌아갔고, 가족들도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엄마 없는 불편에도 참고 적응해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만 생각할 수 있는 때가 있었던가.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길고도 길었던 한 달의 휴가였다. 달콤한 만큼 씁쓸함도 많았지만.
일을 최우선에 두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동안 치우쳤던 내 생각과 생활들을 다시금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었나 보다. 가장 큰 착각은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크게 아프지 않아서 몸의 신호에 민감하지 못해 나를 돌보지 않았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 그리고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내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잊고서 말이다. 하지만 건강 앞에서는 돈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제야 그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온 것에 감사가 나왔다.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휴가라 위안을 삼았지만 한 달의 정지된 시간과 부부가 함께 유럽여행을 하고 올 수 있을 정도로 거액의 병원비를 치르고서야. 하지만 건강은 돈으로 단번에 살 수는 없었다.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쌓여 이렇게 몸에 무리가 오게 되었기에 꾸준한 스트레칭과 걷기 등 운동이 필수였지만 자꾸 잊었다. 그래서 퇴원 후에도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자주 드나들었다. 이젠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내 몸상태에 맞게 매일 꾸준하게 하는 요가 동작 몇 개나 산책이 건강을 지키는 것임을 몸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아파트를 서너 바퀴를 돌고 나니 땀이 난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탁 트인 바다가 그립기도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아직 내겐 시기상조 같다. 올여름은 카페 분위기의 냉방이 잘 되는 동네 도서관으로 휴가를 대신해야겠다. 도서관 통유리 너머로 일자산의 신록도 감상하고 산자락에 있는 공원 산책하면서. 독서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라 했듯이, 내 인생의 시야를 넓혀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