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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y 27. 2021

소홀했던 나 자신에게 반성한다

프롤로그

2020년 12월 31일, 연말. 몇 번째 맞이하는 건지 이제 셀 수 없을 만큼이다.

 

언제나 그랬듯, 연말 분위기는 크게 다를 바 없다. TV에선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 시상식 혹은 특집 방송을 방영해 한 해를 정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1년 마지막 날을 기념해 2020년 마지막 일몰을 보러 서쪽으로 향하거나 1월 1일 첫 일출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저마다 지나온 365일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되돌아보며 스스로 피드백하고 새해에는 자기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보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했다. 이런 식으로 잃어버린 동기 부여하며 삶의 이유를 찾는다.


 좋게도 이날 휴무였다.  또한 2020  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찬찬히 되돌아봤다.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 유독 많았던 해였다.


최초 계획대로라면, 그동안 치열하게 덤벼들었던 본업을 잠시 내려두고 자체 안식년을 기념해 다시 한번 세계여행을 나가려고 조용히 준비 중이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총알도 일찌감치 목표치 이상을 달성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천재지변이 가로막았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미리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지 않아 금전 손실을 입은 건 없으나, 번아웃에 근접해 정신적으로 버티기 한계치에 다다른 나에겐 큰 장벽이었다. 하지만 어쩌나, 내 의지대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 그저 "존버 하자"라고 나 자신 스스로 독려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우지 못한 여파였는지, 그다음 돌발변수가 예고 없이 방문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문제를 드러내며 삐걱대던 직장에 향긋한 봄내음 대신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코로나 19 나비효과가 더해졌는지 매우 차가웠다. 이로 인해 수많은 나의 직장 선˙후배들 상당수가 하루아침에 무직자 신세가 됐다. 나는 날카로운 비수에서 피해 살아남았다. 그들이 직장을 잃은 데 내 책임은 1도 없지만,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보니 나 혼자 살아남았다. 상처투성이 서바이벌 최종 승자가 됐다.


상처 가득한 마음을 안고 울릉도로 뒤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 휴가마저도 천재지변으로 온전치 못했다. 태풍으로 인한 결항 및 딜레이로 발이 여러 번 묶였다. 울릉도 체류가 끝날 때쯤에는 점점 약화된 마이삭 영향에 울릉도 항구가 파손돼 육지로 못 나갈 뻔했다. 돌아온 뒤에는 타이밍 나쁘게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 밀접접촉자로 분류, 자가격리 시간도 가졌다. 나까지 확진판정을 받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나 이만하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첨지랑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불운의 아이콘이다. 이제 다니던 회사에 잔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나는 가을 중반, 이직을 결심하고 새 둥지로 날아갔다.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니 큼직한 사건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분명히 소소하게 좋은 일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저장소가 초기화된 듯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소홀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나의 기록 역사를 되돌아보면, 꽤나 꾸준했다. 유치원 때는 꼬박꼬박 그림일기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기록했고, 초등학교 6년간 쓴 일기장은 최소 10권을 넘었을 만큼 성실히 써내려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일기보단 스터디 플래너를 선호하면서 대학입시 하나만 보고 달렸다. 20대 초반에는 '싸이월드 감성'에 걸맞게 다이어리에 끄적였다.


그 뒤 생계와 그나마 할 줄 아는 재능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기자가 됐고 인쇄소에서 인쇄물 뽑아내듯 매일 활자를 찍어냈다. 그러나 기계처럼 작성한 글 속에 주인공은 타인, 혹은 매개물, 현상 등이었다. 나에 대한,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나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서글펐다.


그래서 1월 1일이 되자마자, 오랫동안 방치해 먼지가 쌓인 개인 블로그에 로그인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작성해뒀던 흔적들은 비공개로 돌려놓고 새 카테고리를 추가해 하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서른 넘어서야 다시 찾는 내 모습, 내 생각, 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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