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잉어빵 팔던 그 노포 아주머니는 잘 지내실까?
홍차영(전여빈) : 혹시 붕어빵과 잉어빵의 차이를 알아요?
빈센조(송중기) : 알죠!
홍차영 : 정말?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데? 말해 봐요.
빈센조 : 붕어빵의 입모양은 '붕'이고, 잉어빵의 입모양은 '잉'이라서.
홍차영 : 에이~ 그거 아니야. 내가 알기론 반죽의 차이야.
빈센조 : 반죽은 똑같아요. 입모양의 차이라니까.
홍차영 : 우리 또 내기할래요?
빈센조 : 좋아요, 이번에도 딱밤내기!
tvN 드라마 '빈센조'를 보다가 나온 붕어빵과 잉어빵 에피소드. 이후 전개될 감동 코드를 위한 떡밥이긴 했으나, 흥미로웠다. 그동안 브랜드를 구분 짓고자 붕어빵 vs잉어빵으로 구별되는 걸로 알았던 사람이었으니까.
드라마 본방으로 시청하다가 급호기심에 직접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홍차영 말대로 붕어빵과 잉어빵은 반죽의 차이였다. 붕어빵은 밀가루로 반죽해 담백한 맛을 내는 반면, 잉어빵은 밀가루에 기름이나 버터, 찹쌀이 추가된 반죽을 사용한다. 그래서 붕어빵보다 촉촉한 식감을 자랑한다. 유독 잉어빵을 담은 봉투에 쉽게 기름이 배는 것도 이 때문. 육안으로도 차이점을 식별할 수 있다. 붕어빵은 팥 앙금이 눈으로 보기 어려운 대신 문양이 확실한 반면, 잉어빵은 찹쌀과 기름 때문에 팥 앙금이 투명하게 비친다.
'빈센조'에서 언급한 붕어빵, 잉어빵 때문에 20년 전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올 때가 문득 생각났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2001년 봄,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고향 울산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 가게 됐다. 사유는 아버지가 수도권 지역으로 발령받아서다. 돌이켜보면, 이사 와서 좋았던 점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들었던 친구들과 동네를 두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한다는 게 슬펐고, 쉽지 않았던 일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사 소식을 듣고 한동안 부모님을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전형적인 수도권 신도시 중 하나였고, 동네 입구에서 느꼈던 첫인상은 잘 정돈됐다는 느낌이었다. 입구부터 끝까지 쭉 뻗은 10차선 도로를 경계로 양쪽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렬됐다. 각 아파트 단지 내에는 계획 조성된 공원과 학교들이 자리 잡았고, 동네 중심에는 홈플러스와 그랜드마트(지금은 롯데마트로 바뀌었다)가 눈싸움을 벌이듯 점령하고 있었다. 이 두 곳 주변에는 중심상가라고 명명된 각종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새것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인지 인위적인 느낌이었다.
전학 간 중학교에 녹아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동안 쓰던 경상도 사투리는 전학 오자마자 금방 환경에 맞춰 바꾸긴 했으나 문제는 교복이었다. 이 학교 교복 상의는 옅은 파란색이었고, 하의는 회색. 어머니는 교복비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상의만 사주셨다. 하의는 이전에 다니던 중학교 교복 하의도 '회색'이니까 그대로 입으라고 하셨다.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건 아니다. 회색이긴 하나, 검은색에게 가까운 짙은 회색이다. 육안으로 봐도 쉽게 구분 가능할 수준이다. 회색일지라도 명암 차이로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데, '회색 계열'이라고 강제로 입고 다녀야 한다니. 너무 튀잖아. 그 바지를 입고 등교하면 뭔가 쪽팔렸다. 다른 아이들이 '전학생이 교복도 제대로 못 입고 다니냐'는 것처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남들에게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나 이런 식으로 눈에 띄는 건 싫었다. 그래서 당시 어머니의 고집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후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드러내면서 새 바지를 구입하기까지 반년 넘게 걸렸다.
다행히 낯선 환경에서 처음 접한 아이들과 문제없이 친해지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하굣길에 있었던 노포였다. 그 노포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 학생들에겐 만남의 광장 같은 존재였다. 노포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입구가, 동쪽으로는 학교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공원 가는 방향이다. 반대편에는 다른 아파트 단지로 넘어갈 수 있는 육교 초입길이다. 그래서 용돈이나 잔돈이 있으면 종종 이 노포에서 군것질을 하며 희희낙락했다. 특히 우리는 노포 아주머니가 만든 컵떡볶이와 붕어빵을 자주 사 먹었다. 나중에는 붕어빵 대신 잉어빵이 등장했다. 제법 맛있어서 우리 사이에선 맛집으로 통했다. 컵떡볶이는 한 컵당 500원, 붕어빵(잉어빵)은 개당 300원. 만 원도 안 되는 용돈 받는 중학생들이 사 먹기엔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종종 순번을 정하며 한 턱 내기도 했고, 더치페이하기도 했다. 그 노포가 없었더라면 쉽게 이 동네에 녹아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년이 지난 현재, 그 노포는 사라졌다. 동네 치안을 지키는 CCTV 카메라가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끔 아저씨들이 CCTV 카메라 근방에 가판대를 설치해 주민들 상대로 물건 판매하는 정도다. 노포 영향인지 우리 동네에서 노릇노릇한 반죽과 팥 굽는 냄새,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다 최근 동네 한 바퀴 산책하다가 이웃 단지에서 잉어빵을 파는 노포를 발견했다. 이 노포는 자리 잡은 지 오래됐는데, 나는 요즘에서야 발견했다. 이 집 아저씨는 잉어빵에 팥과 크림을 나눠 판매했다. 아저씨만의 특별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맛볼 때마다 기가 막혔다. 반죽을 씹는 촉감과 팥 크림 맛이 입 속에 녹아내렸다. 다음 겨울을 기약하는지, 잉어빵 노포는 휴업 중이다. 그때 붕어빵, 혹은 잉어빵 맛을 느끼려면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겨울을 설레는 소소한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