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설운동장을 주름잡았던 사나이, '유비' 故 유상철.
남자들 중에선 상당수가 스포츠 경기를 보고 듣고 직접 하면서 즐기는 걸 좋아한다. 딱히 할 말이 없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스몰토크용으로 꺼내기 안성맞춤용 중 하나로도 스포츠는 제격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같은 갑갑한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나도 스포츠를 좋아한다. 보고 듣는 것도 좋아하고, 잘하진 못하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땀 흘리면서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한다. 종목도 편식하지 않는 편이다. 야구, 농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볼링, 테니스, MMA… 최근에는 포뮬러원까지. 가리지 않으나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걸 묻는다면, 나는 "축구"라고 답할 것이다. 아마 가장 먼저 입에서 튀어나올걸?
왜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이렇다. 9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쉬는 시간은 딱 한 번(날씨가 더워지면 경기 중간 한 번 더 쉬는 쿨링타임도 가동한다만)이라 몰입해서 보기 참 적당하다. 골키퍼를 제외하면 피치 위에서 뛰는 선수들이 발로 공을 차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확도에 변수가 많다. 승패 확률을 무시하고 이변이 일어나는 자이언트 킬링(giant-killing)이 일어나는 경우도 다른 종목보다도 많다. 그 현장을 목격할 때 만끽하는 짜릿함도 축구의 묘미다. 지금은 이리저리 다른 관심사가 많아지고 본업에 충실하다 보니 다소 관심이 라이트해지긴 했으나, 내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고 환장하고 죽고 못 사는 '축덕'들이 많다. 이게 다 축구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이럴 것이다. "언제부터 축구 좋아했어요?". 기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어엉마아알 오래됐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울산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 앞에는 울산공설운동장(現 울산종합운동장)이 있었다. 경기장 주변에 푸른 잔디밭이 깔려 있어 소소하게 산책하거나 가볍게 소풍 혹은 나들이하기엔 만만한 장소였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도 공설운동장 앞 잔디밭에서 가끔 야외수업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장소 자체는 매우 친숙했다.
그러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공설운동장 각 꼭짓점에 설치된 경기장 조명이 기지개를 켜면서 불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는 공설운동장에서 축구경기가 있다는 뜻. 경기가 있는 날에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에서 일하시던 아저씨들이 차를 몰고 와 축구를 보러 왔다. 그래서 운동장 앞과 그 주변 일대는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공설운동장 입구에 들어서면 맥주와 소주, 구운 오징어 냄새가 진동한다. 산업의 역군들은 하루 동안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축구경기를 보면서 시원한 술 한 잔으로 날려버린다. 나 또한 직장인이 되어보니 그들의 소확행과 기분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경기를 보러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집 아파트 창문에서 공설운동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공설운동장이 환하게 밝아지면 오늘은 누구랑 경기 하나 대형 전광판을 관찰했다. 다른 거 하다가도 쪼르르 창문 앞으로 달려가 저 멀리 전광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득점란을 보며 그날 누가 이겼는지 확인했다. 이것이 '축세권'에 살았던 아이의 흔한 성장과정이다.
경기장 앞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축구팀에게도 빠져들게 됐다. 당시 울산공설운동장 주인은 울산 현대(그때는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로 불렸다). 그때 울산 현대 팀 스쿼드는 화려했다. 꽁지머리 김병지부터 넘버 10 팀 에이스인 '가물치' 김현석, 날쌘돌이 정정수, 터프한 플레이 송주석, 김종건, 황승주, 김상훈 등이 포진했다.
이들 중에서 최애선수는 유상철. 꼬꼬마 남자아이 눈에는 공격수로 뛰다가 수비수로도 뛰는 멀티 플레이어가 신기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력도 남달랐다. 정말 많이 뛰면서 공수 모두 탁월했다. 지금도 기억 남는 건 유상철이 득점왕을 차지했을 때였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인 1998년에 미드필더로 23경기 15골을 기록했다. 그동안 공격수들의 전유물이었던 득점왕을 그가 가져갔고, 나에게 충격이었다. 2002년 일본에서 잠시 돌아왔을 때 8경기 9골을 넣었다. 재밌게도 유상철이 8경기 뛰었을 때 모두 전승, 이를 바탕으로 그해 베스트 공격수로 선정됐다. 2002년 폴란드전 골과 1998년 벨기에전 동점골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말씀. 아직도 공설운동장서 진행했던 유상철이 득점왕 기념식이 아른거린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축구 잘하는 선수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투톱이다. 나에게 유상철은 메시고 호날두같은 존재다.
그렇게 울산공설운동장과 유상철이 키운 아이는 자라면서 축구에 흠뻑 빠졌다. 학창 시절에 국내 소수 마니아만 즐겼던(지금은 어느 정도 대중화된) 챔피언쉽 매니저 2002 K-리그(지금은 풋볼매니저 시리즈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함부로 발을 담가 학업성적을 말아먹기도 했다. 나 혼자 죽을 수 없다며 이후 발매된 풋볼매니저를 같은 반 친구들에게 빌려주면서 그들을 천천히 중독의 늪에 빠뜨리는 빌런 역할도 했다. 얘들아 미안하다, 너희들의 성적을 내가 망쳤구나. 이제야 이렇게나마 용서를 구한다.
또 고종사촌형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위닝일레븐을 종종 하면서 쌓은 짬바를 발판 삼아 친구들과 플스방 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절친 라덴과 과외를 핑계로 합당하게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플스방 죽돌이가 됐다. 대학교 때는 플스방 수호신(aka. 위닝 타짜)으로 승격돼 대학 선·후배들의 통행료를 뜯어내기도 했다.
이는 유럽여행에서도 큰 밑거름이 됐다. 축구에 미친 20대 열혈남아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해외축구팀 경기장 방문을 나도 했다. 터키부터 영국까지 여행하면서 경기장 방문은 필수코스였고, 여행 계획 및 동선도 우선시 됐다. 그만큼 나는 '헤비축덕'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은 '라이트한 축덕'이다. 가끔 울산현대 경기를 보긴 하나, 예전처럼 피가 끓어오르진 않는다. 패배하거나 부진하면 '그런가 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조금 차갑게 식은 듯한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생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미쳤어야 했나 가끔 생각들 때도 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하나에 열정적으로 목맸던 순간과 시절이 있었기에, 다른 것들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좋아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았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나의 첫 번째 영웅. #유상철은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