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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Feb 25. 2022

결국 속은 건 나 자신이었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리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에서 나올 것 같았던 괴물이나 유령은 보이지 않고, 그로테스크하게 연출한 시각적인 충격도 없었다. 그가 줄곧 그려온 '기괴한 동화'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나이트메어 앨리'는 전작들 못지않게 강렬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는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동명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전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포함해 총 4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영화는 집을 떠나 우연히 서커스단에 합류하게 된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딘가 아픔이 있어 보이는 그는 본능적인 이끌림에 극단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독심술 속임수를 쓰는 지나(토니 콜렛),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 부부의 보조로 일하면서 이들이 펼치는 기술에 매료됐다. 이 속임수로 성공하겠다며 몰리(루니 마라)와 떠나지만, 더 큰 욕망에 휩싸이면서 위기에 빠진다.


기이한 서커스 극단에 매혹된 스탠턴처럼, '나이트메어 앨리'는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끊임없이 뿜어내며 스크린으로 끌어들인다. 신비함으로 가득한 카니발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을 시작으로 독특한 캐릭터들, 나아가 스탠턴이 야망을 위해 떠난 미국 뉴욕이 비추는 화려함과 어두움의 양면성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비주얼의 향연이다. 



그리고 '나이트메어 앨리'가 들려주는 스토리와 디테일한 부분들은 시종일관 눈길을 끈다. 큰 틀로 보면 욕망으로 인해 몰락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반복과 변주, 그리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촘촘하게 설계해 나가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자세하게 뜯어보면 이미 스탠턴의 앞날을 암시하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스탠턴과 몰리가 자신들의 마음을 확인한 회전목마와 그를 사로잡았던 광인(geek), 사생아 에녹 등이 그랬다.  


후반부 몰입도를 한껏 높이는 스탠턴과 정신과 의사 릴리스 리터(케이트 블란쳇) 두 인물이 그리는 관계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음모를 꾸미다가 서로의 탐욕을 드러내 배신까지 치닫게 되는데, 그중 이들이 나눈 대사들이 귀에 맴돈다. 남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착각이며 결국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브래들리 쿠퍼와 케이트 블란쳇의 팽팽한 연기합이 더해져 진한 인상을 남긴다.


'나이트메어 앨리'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펼치는 열연 또한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 야심을 드러내다가도 나약한 얼굴을 드러내는 브래들리 쿠퍼와 욕망을 숨기는 케이트 블란쳇의 차가운 카리스마, 루니 마라의 슬픔, 토니 콜렛의 불안함, 윌렘 더포, 론 펄먼, 리처드 젠킨스까지 명성에 어울리는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앞서 언급했듯,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시그니처인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괴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 괴물처럼 보이는 인간 그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이 등장한다. 이를 보며 나 또한 괴물화되어 몰락했는지 되돌아보게 만들면서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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