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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r 12. 2022

10대 소녀의 착한 콤플렉스 극복기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리뷰

아시아권 문화에서 자랐던 딸들 중에서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말 잘 들어야 하며, 부모 말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가 알면 실망할까 봐 자신이 정말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꼭꼭 숨겨야만 했고, 이것이 속앓이로 다가온다.


11일 디즈니+로 단독 공개된 픽사의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2년 토론토를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중국계 캐나다인 13살 소녀 메이린 리(로잘린 치앙)가 어느 날 갑자기 레서판다로 변하게 되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메이린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엄마 밍(산드라 오)이다. 언제나 엄마에게 '좋은 딸', '착한 딸'로 비쳐야 한다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자라왔기 때문.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덕질하는 5인조 보이그룹 4타운 덕질하는 것과 좋아하는 이성을 편히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 그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안 내력 때문에 레서판다로 변하는 자신의 또 다른 면까지. 메이린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레서판다를 감추고 싶었으나, 친구들에 비밀을 들킨 메이. 걱정과 달리 친구들은 푹신푹신한 담요 같은 빨간 털복숭이 레서판다가 귀엽다며 좋아한다. 때마침 4타운이 토론토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콘서트 티켓 비용을 모으기 위해 메이와 친구들은 레서판다를 이용한 사업을 시작한다.



'메이와 새빨간 비밀'은 심쿵하게 만드는 귀여운 레서판다부터 깜찍 발랄한 캐릭터들로 그야말로 '귀여움'을 뽐내고 있다. 귀여운 겉표지를 한 꺼풀 벗겨 내면, 10대 소녀의 사춘기 극복기를 보여주고 있다. 메이린이 극 중 대사로 언급하는 "내 안의 짐승"이나 그를 곤란케 만드는 레서판다가 예기치 않게 닥쳐온 사춘기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 착한 딸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메이린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서서히 성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발랄하게 표현해낸다.


연출을 맡은 도미 시가 중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와 겪었던 자전적 요소들도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같은 문화권 출신 혹은 이민 2세대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디아스포라 영화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물론 '메이와 새빨간 비밀'은 이민 세대가 겪는 문화 충돌이나 세대 갈등보다는 사춘기 소녀들이 성인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부모와의 갈등과 화해, 친구들 간의 우정에 집중하고 있다. 


중간중간 아시아 가정을 스테레오 타입처럼 표현된 점도 없지 않으나, 개성 만점 캐릭터들의 발랄함과 역동적인 표현력이 많이 부각돼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또 한국계 캐릭터인 애비(박혜인)의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한국어는 반갑기도 한다.


그동안 봐왔던 '픽사 애니메이션'의 명성에 비하면 어딘가 2% 심심함이 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영화 전체 완성도나 퀄리티가 부족한 점은 없다. 귀여운 빨간 레서판다처럼 모든 이들을 사로잡는 충분히 밝고 행복한 영화다. 더불어 2002년 우리는 무엇을 했었나 잠시 추억 여행하기에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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