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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r 03. 2022

아직도 보여줄 게 많았던 배트맨

영화 '더 배트맨' 리뷰

DC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 배트맨은 국내외 관객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왔던 캐릭터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사화 영화가 반 세기 넘게 이어왔고, 이를 소화한 배우들은 '역대 배트맨 배우 계보'로 한데 묶어 표현할 정도다. 


이미 대중에게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혹성탈출' 시리즈를 연출한 맷 리브스 감독이 다시 한번 배트맨의 이야기를 담은 '더 배트맨'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은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와 제임스 고든(제프리 라이트) 경위의 도움 아래 배트맨으로 활동하면서 고담시 범법자들을 응징한다. 대신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처럼, 최근 DC에서 구축하고 있는 확장 유니버스와는 독립된 이야기처럼 리셋했다.


돌연변이 혹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오로지 방탄능력만 갖춘 인간계 히어로의 대표주자 배트맨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2년차 배트맨으로 활동 중일 때는 "나는 복수다" 외치며 항상 분노를 표출하는 반면, 본캐 브루스 웨인일 때에는 초췌한 몰골에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모습이다. 그저 복면 한 장일뿐인데, 이를 사이에 두고 브루스 웨인의 양면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인상적이다.



재밌는 건, 브루스 웨인뿐만 아니라 '더 배트맨' 속 캐릭터들 대부분이 양면적인 면을 보인다. 고담시를 대혼돈으로 빠뜨린 리들러(폴 다노)는 복면을 쓰면서 파괴적인 본성을 표출해내고, 고담시를 대표하는 '시민 영웅'들은 자신들의 어두운 민낯을 선한 가면으로 가렸다. 자유롭지 못한 브루스 웨인과 닮은 구석이랄까.


'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슈퍼히어로 보단 탐정에 가깝다. 다짜고짜 범인을 추격하기보단 리들러가 남긴 단서들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추리한다. 물론 수수께끼 풀이와 언어유희를 즐기는 리들러와 연관되었기에 풀어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히어로 영화 특유의 액션이 빠진 건 아니다. 매우 현란하거나 화려한 건 아니나, 실감 나는 맨몸의 혈전으로 눈요기 거리를 제공한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아쉬웠던 액션의 이상향을 '더 배트맨'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 배트맨'은 히어로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감독의 예술이 잔뜩 담긴 붓질을 감상할 수 있다. 90년대 클래식을 2022년에 우아하게 그려냈다. 3부작 드라마 같은 '더 배트맨'의 연출력은 가히 엄지손가락을 들 만하다. 오랜만에 상업영화 주연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이나 빌런을 맡은 폴 다노 등의 아우라도 강력하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처럼 역대급이라 칭송받기엔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있다.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감정 고조가 큰 편이 아니며, 176분이라는 너무나 긴 러닝타임도 장벽이 된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더 배트맨'은 충분히 볼 가치가 넘치고, 배트맨이 보여줄 게 또 있다고 증명한 작품이다. 그래서 후속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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