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리뷰
국내 매체물에서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가 처음 소개된 건 지난 2009년 KBS에서 방영됐던 '아이리스'였을 것이다. 당시 주인공 최승희(김태희)가 NSS 소속 프로파일러라는 설정으로 나와 사건 현장 증거나 패턴을 분석하는 모습이 살짝 나오긴 했으나, 블록버스터 액션을 앞세웠던 '아이리스' 내에선 금방 묻혔다. 그래도 이때 알려진 덕분인지, 이후 프로파일러 캐릭터가 꾸준히 등장하게 됐다.
김남길, 진선규 주연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또한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형사들이 악인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형사물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넷플릭스 '마인드헌터'처럼, 오래되지 않은 한국 프로파일링 역사를 압축하면서 실제 범죄사건들을 범죄행동분석관의 시선에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12회 내내 시종일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특히 연쇄살인범들의 범죄 심리 분석에 매우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사건발생-해결 단순구조에서 벗어나 범죄자들의 마음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빠져 들어간다. 그렇다 보니 주인공 송하영(김남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송하영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깊게 체험할 수 있다. 후반부에는 송하영이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악의 마음에 발을 디딘 듯한 섬뜩한 느낌도 체험할 수 있다. 이때 오랫동안 쌓아둔 감정선들이 한꺼번에 폭발시켜 송하영의 내면을 표현해내는 김남길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송하영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피폐할 정도로 사건에 몰입하는 프로파일러 1세대들의 고충도 눈여겨볼 만하다. 극 중 송하영과 국영수(진선규)가 속한 범죄행동분석팀이 걸어온 길은 매번 순탄치 못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팽배했던 주먹구구식 수사 현장과 경찰들의 보수적인 태도, 무시하는 시선 등에 부딪치면서 전해지는 답답함, 여기에 국영수 또한 송하영 못지않게 내면으로 흔들렸던 모습들은 '최초를 걷는' 이들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말해준다.
앞서 언급했던 '마인드헌터'와 비슷하면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만의 차별점 또한 눈에 띈다. '마인드헌터'는 우아하고 고전적인 느낌, 교외의 서늘함을 살려낸다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좀 더 습하고 끈적끈적한 기운을 내뿜는다. 한국 특유의 깊은 밤 어두운 주택가 골목이 주는 공포도 실감 나게 그려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연기자들의 내공도 빼놓을 수 없다. 한껏 차분하고 절제된 김남길과 활기를 불어넣는 진선규, 범죄행동분석팀과 각을 세우다 점점 믿고 동조하는 윤태구 역의 김소진이 중심을 잡고 빛을 낸다. 이들 이외 악역으로 분한 배우들의 존재감도 칭찬할 만하다. 특히 실존 범죄자들의 외형과 소름 끼치게 높은 싱크로율로 맞춘 점은 압권이다.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높은 퀄리티를 자랑한 것에 비해 따라오지 못한 시청률이 유일한 옥에 티다. 몰입도와 흐름이 중요한 장르인데 동계올림픽 중계로 3주 연속 결방한 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데도 '알쓸범잡'처럼 시리즈로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계속 나오고 있다. 기존 형사물에서 한 단계 뛰어넘은 완성도가 결국 대중을 사로잡은 결과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