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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r 21. 2022

영국 왕실, 안녕히 계세요!

영화 '스펜서' 리뷰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러닝타임 116분 동안 지켜보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가 어떤 심경으로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으나, 이해할수록 가슴이 더욱더 옥죄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왕세자비의 삶이었다.


영화 '스펜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며느리이자, 찰스 왕세자의 부인이었던, 세계인들에게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불렸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그렸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비극적인 왕실 생활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긴 하나, '스펜서'는 왕실 가족과 함께 샌드링엄 별장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연휴 3일로 한정지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다이애나 스펜서(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등장하는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전통에는 예외가 없다"라며 왕실은 고지식하고 엄격한 규율과 관습을 강요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스텔라 고넷)부터 남편 찰스 왕세자(잭 파딩), 경호를 맡은 그레고리(티머시 스폴) 소령, 별장 밖에 숨어있는 파파라치들의 렌즈까지 다이애나 스펜서를 일거수일투족으로 감시하는 눈들이 사방에 깔렸다. 분명 연휴인데 그에게 허락된 자유와 선택은 없었다. 여기에 라디오헤드 출신 작곡가 조니 그린우드의 심장 조여 오는 배경음악이 큰 역할을 해냈다.


일분일초가 지옥 같은 샌드링엄 별장에서 다이애나의 눈에 띈 건, 철조망 건너편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 이미 폐허가 되었으나, 생가와 샌드링엄에는 다이애나의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앤 불린 왕비에 대입하지 않기 위해선 행복했던 유년시절이 필요했고, 벼랑 끝에 내몰린 다이애나는 현실 도피를 위해 생가로 탈주한다.



스펜서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강력하다. 198,90년대 트렌디세터로 불렸던 다이애나의 스타일링은 그를 옥죄는 목줄처럼 느껴졌고, 폐쇄적인 영국 왕실에 부딪쳐 좌절하고 극악으로 치닫는 감정 표현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복합적인 상황에 신경쇠약까지 오는 과정에서 취재진 앞에서 보이는 떨리는 미소는 안쓰럽게 다가왔다.


그러다 숨통을 쥐고 있던 진주 목걸이를 끊어내는 장면은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이때부터 다이애나 스펜서를 향한 파블로 라라인의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꿩 사냥에 억지로 참여한 사랑스러운 두 아들 윌리엄, 해리의 손을 잡고 별장 밖으로 뛰쳐나오는 세 모자의 모습은 진정 행복한 얼굴이었다. 메기(샐리 호킨스)가 말하던 "사랑, 충격, 그리고 웃음"이었던 것.


안타깝게도 현실의 다이애나 스펜서를 영화 '스펜서'처럼 마음 편하게 KFC를 먹으면서 템즈 강변을 유유히 감상하지 못했다. 영국 왕실을 향해 "안녕히 계세요!"라고 당당하게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스펜서'의 후반부와 엔딩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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