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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pr 23. 2022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게 옳은가

드라마 '돼지의 왕' 리뷰

지난 2011년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당시 세간에 화제를 몰고 왔던 작품이다. 학교라는 사회 공동체 속에서 폭력, 가정환경 등을 기준을 삼아 포식자 '개'와 먹잇감 '돼지'로 서열은 나누고, 이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뒤에도 따라붙어 피해자들의 삶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연상호 감독의 대표작 '돼지의 왕'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다시 한번 세상에 공개됐다. 애니메이션이 분명 훌륭한 작품성을 지녔고 현재에도 만연한 학교 폭력 사태를 지적할 수 있는 시의성도 반영되어 있으나, 시리즈로 끌고 가기엔 힘이 부쳐 보였다. 연상호 감독은 탁재영 작가와 만나면서 이 문제점을 해결했다.


드라마로 부활한 '돼지의 왕'은 원작과는 사뭇 다른 노선을 보여줬다. 애니메이션에선 성인이 된 피해자 황경민(오정세)과 정종석(양익준)은 재회 현장에서 학폭 기억을 곱씹었다면, 드라마 버전에선 복수극으로 포문을 열었다. 극한에 몰린 황경민(김동욱)은 과거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이들을 하나하나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으로 복수했다. 김철(최현진)이 말한 것처럼 칼을 들고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


사적 복수를 실현하는 황경민의 행보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자신을 성추행했던 안정희(최광제)를 벽에 묶어놓고 잔인하게 난자해 성기를 잘라 죽이고, 안정희가 따르던 강민(오민석)에겐 그의 명성과 지위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 확실히 폭력적이지만 이를 시청한 이들 대부분은 "가해자들이니까 당해도 싸다"라고 반응한다. 그러면서 황경민을 잡으려고 하는 정종석(김성규)과 경찰이 야속하게 느낄 정도.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던 사적 복수를 앞세운 '돼지의 왕'은 중반부부터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한다. 황경민은 왜 같은 피해자이자 절친인 정종석을 끊임없이 언급하고, 정종석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었던 것인지, 철이가 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하나둘 의문점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10회 엔딩에 다다르면서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공개된다. '돼지의 왕' 제작진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달까. 범죄 스릴러의 필수 공식인 반전을 이렇게 절묘하게 활용할 줄이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주는 쾌감과 함께 '돼지의 왕'은 다른 메시지도 안겨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 똑같이 폭력으로 응징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가를 묻는다. 동시에 나의 가치관이 정말 올바른 것인지 테스트받는 느낌도 든다.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개척하면서도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지킨 '돼지의 왕'의 각색은 칭찬할 만하다.


'돼지의 왕'에 높은 흡인력을 선사한 배우들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매우 선한 얼굴로 핏빛 복수를 저지르는데 비난은커녕 응원하게끔 만드는 김동욱의 아우라부터 계속 뜨겁게 밀어붙이는 김성규, 제3자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채정안 그리고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인 신석중 시절을 실감 나게 살린 아역 배우들(이찬유, 심현서, 최현진, 문성현 등)까지. 호연 그 자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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