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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pr 25. 2022

어떻게든 마무리 짓겠다는 그녀들

영화 '앵커' 리뷰

영화 중간중간 헐거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어떻게든 이 작품을 마무리 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영화 '앵커' 이야기다.


'앵커'는 생방송을 앞둔 YBC 방송국 간판 앵커인 정세라(천우희)에게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의문의 제보 전화가 걸려온 뒤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다. 장르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천우희가 전문직 역할로 나서는 첫 작품이자, 독립영화에서 활약했던 정지연 감독의 첫 상업 영화 입봉작이다. 참고로 정지연 감독은 '앵커' 각본까지 맡았다.


'앵커'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랑과 증오, 욕망에 뒤틀린 관계로 그려내면서 여성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미혼모, 경력단절)을 결합시켜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것이 '앵커'의 주요 포인트. 동시에 정세라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조우하는 장면들과 이를 오컬트적인 묘사로 표현해낸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다만, 이 흥미로운 요소들은 너무 전반부에만 돋보인다는 점이다. 중반에 '자녀 살해 후 자살(동반자살)'이 등장하면서부터 휘몰아칠 것 같은 '앵커'의 전개 속도는 차츰 동력을 잃어간다. 아마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욕심이 너무 컸던 게 '앵커'의 발목을 잡아버리고 만 셈이다.



스릴러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반전들도 '앵커'에선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정세라와 그의 모친 이소정(이혜영) 사이에 얽힌 이야기는 앞서 깔린 복선들과 초반부에 드러난 삐뚤어진 관계에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모녀에 대한 추가 설명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스릴러가 적합했나 의심되기도 했다. 또 정세라의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 등 일부 설정 오류들도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면서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방송국과 뉴스, 앵커를 표현하는 것도 전형적이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방송국 간판 앵커의 스타일링이 세련됨보다는 정형화된 틀에 따라가는 수준이었던 것도 '앵커'의 아쉬운 부분이다.


단점이 계속 노출되는 상황에서도 천우희는 '앵커'의 구멍을 훌륭한 연기력으로 메꿔나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연기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빼앗는다. 첫 전문직인 앵커 역도 곧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 스릴러의 템포를 완벽히 맞춰나간다. 


정세라의 엄마로 나온 이해영 또한 적은 분량 속에서도 천우희와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이름값을 확실히 증명했다. 또 정신과 전문의 최인호로 분한 신하균도 어딘가 모르게 미스터리한 기운을 내뿜으며 '앵커'의 부족한 곳을 채웠다. 이들 덕분에 '앵커'는 중간에 어찌 됐든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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