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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y 02. 2022

고통의 시간 속에서, 생존한 당신

드라마 '파친코' 리뷰

모든 것이 혼란 그 자체였던 격동의 시간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은 한 치 앞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으나, 이것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살아야 한다", 생존이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버텨야만 했다.


애플TV에서 공개된 드라마 '파친코'가 이러한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제작한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살아간 여성 김선자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부산 영도에 살았던 10대 소녀 선자(김민하)와 반 세기가 지나 일본 오사카에 머무르고 있는 노년 선자(윤여정)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파친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일제의 만행이 생생하게 녹아있는 일제 강점기 역사다. 한국 땅에서 난 쌀은 한국인에게 금지되었음에도 일본으로 떠나는 딸 선자에게 목숨 걸고 쌀 두 홉을 건네는 어머니 양진(정안지)부터 조선인 대학살의 원인이 됐던 관동대지진,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백이삭(노상현), 만주 공장에 일거리 있다고 집을 떠났다가 '위안부 피해자'가 된 노년의 복희(김영옥)까지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낸다. 그래서 가슴에 멍이 들 만큼 먹먹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돋보이는 건 여성 선자다. 어려서부터 꾀가 많고 친절한 아이였으나, 자수성가한 사업가 고한수(이민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덜컥 한수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심지어 그가 유부남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선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아이를 지키고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낸다. 때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결단력 강한 모습으로 생존했다. 세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긍심을 지킨 그는 손자 솔로몬(진하)에게도 "잘 사는 거보다 우떻게 잘살게 됐는가, 그기 더 중한 기라"라며 한마디 던진다. 이와 함께 딸 선자에게 생존력을 전수한 양진, 두려움에 떨면서도 동서 선자를 돌보는 경희(정은채), 그 외 수많은 여성들은 강인함과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파친코'는 이민자의 삶이 어떠한 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선자 가족을 포함한 재일교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재일교포들과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유학하고 뉴욕에서 일하지만 결국 유리천장을 뛰어넘지 못한 솔로몬, 어디든 속하지 못하면서 자유로울 수도 없는 이민자들의 고충은 1세기가 다다르도록 진행형이다. 마지막 회 말미에 공개된 재일교포 노인들의 인터뷰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파친코' 속 역사와 여성, 이민자들의 삶은 단순히 한국 근현대사를 아는 이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혹은 비슷한 상황을 겪는 다른 국가, 인종에게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인지 'Let’s Live For Today'에 맞춰 춤추는 '파친코' 인물들의 모습이 웃픈 감정도 느껴진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볼거리는 8회 에피소드를 꽉꽉 채운 배우들의 열연이다. 그중 아이-청년-노년 선자로 3대로 나눠 연기한 전유나-김민하-윤여정의 존재감이 가히 압도적이다. 세 배우가 있었기에 선자의 인생이 대중에게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어 마음을 울릴 수 있었다.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만큼, 앞으로 선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낼지 또한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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