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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May 24. 2022

우연과 상상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힘

영화 '우연과 상상' 리뷰

엄청 특별하거나 독특한 구석은 없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극 중 등장인물들과 동화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을 관람하면 이런 느낌을 받곤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신작 '우연과 상상'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을 찾아왔다. '우연과 상상'은 '우연'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단편 영화 3개를 묶은 작품이다. 옴니버스처럼 별개 구성이긴 하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세 편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부터 큰 흥미를 유발한다. 메이코(후루쿠와 코토네)와 츠쿠미(현리), 메이코와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그리고 삼자대면 총 3가지 상황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롱테이크로 담아낸 2차례 대화가 빚어낸 높은 밀도가 보는 이들을 끌어당긴다. 


그렇게 이어진 삼자대면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메이코, 츠쿠미, 그리고 카즈아키 세 사람의 짧은 대화들은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 보인다. 대신, 말하는 이들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여운을 가져다준다.


바통을 이어받은 두 번째 단편 '문은 열어둔 채로' 또한 흥미롭다. '문은 열어둔 채로'는 첫 번째 에피소드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보다 더 단순한 구도다. 깐깐한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에게 낙제 점수를 받아 앙심을 품은 사사키(카이 쇼마)는 섹스 파트너 나오(모리 카츠키)에게 교수를 유혹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나오가 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어쨌든 교수를 유혹하려고 접근한다. 


교수 사무실에서 나누는 두 남녀의 건조하고 딱딱한 대화가 갑자기 긴장감을 가지기 시작한 건 낭독의 영향이었다. 다소 외설적인 내용을 지닌 세가와의 소설을 나오가 읽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을 전달하고, 평행을 달리던 두 남녀의 감정선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여성은 불가능할 것 같은 절망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되면서 전환점을 예고한다. 이 지점에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우연과 상상을 등판시켜 허를 찌른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다시 한번'은 '우연과 상상'의 경이로움을 대변하는 장이다. 센다이 역 부근에서 우연히 만난 두 여성 모카 나츠코(우라베 후사코)와 코바야시 아야(카와이 아오바)의 이야기는 우연과 상상에 기반돼 진행되는데, 매우 익숙한 그림으로 표현해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여기에 각자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났을 때를 재연하는 신은 이 영화 속 백미이자 관객들의 마음속 파도를 크게 일렁이게 만든다.


인생은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으로 흘러가며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끊임없이 오간다. 그중 불행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만약'을 가정해 상상으로나마 잠시 동안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우연과 상상'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단편으로 풀어낸다. 여기서 우연과 상상을 한 줄기 빛으로 삼아 상황을 극복하고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숨은 의도가 아닐까. 마법보다 더 불확실하지만 문을 열어둔 채로 다시 한번 해낼 수 있다는 경이로움을 '우연과 상상' 알게 모르게 심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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