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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02. 2022

공감 못하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리뷰

"날 추앙해요."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는 내내 이상하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접하기 힘든 '추앙', '갈구', '환대' 등 단어를 적극 활용한 문화체 대화부터 진입장벽이 생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전사 등은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고, 호흡마저 염씨 삼남매가 산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기나긴 통근길처럼 늘어진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은 이를 감당해야만 한다. 


'나의 해방일지'가 방영하는 내내 불호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온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구석이 계속 눈에 밟히기 때문일 것이다. 16회 완주를 끝난 뒤, 비공감하는 반응을 되돌아봤을 때 오히려 이게 행복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산포 촌구석에서 서울 직장까지 꿋꿋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는 염씨 삼남매 기정(이엘),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 모두 하나 이상 얽매인 채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간다. 미정은 인간과 관계에 대한 환멸, 창희는 노른자(서울)의 삶을 동경하면서 흰자(경기도)의 삶을 탈출하고 싶어 했고, 기정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언제나 넘쳤다. 이 삼남매가 떠안고 있는 문제들과 이들이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이 우리네와 너무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산포 밖에서 흘러 들어온 외지인 구씨(손석구)라는 돌멩이로 인해 잔잔한 호수에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인간관계 또한 노동으로 생각하던 염미정은 구씨에게 뜬금없이 "추앙하라"는 한마디를 던지며 '개새끼' 수집을 끝내고 혐오와 적대로부터 해방을 시작한다. 염미정의 영향을 받은 구씨 또한 인간 혐오에서 조금씩 해방하려는 발버둥을 친다. 염제호(천호진) 대신 돈을 받아오거나, 염창희에게 초호화 외제차량을 빌려주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씨의 영향을 받은 창희는 조금씩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다. 암 투병 중인 지현아(전혜진)의 전 남친을 병간호를 택하며 대박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그러면서 하고픈 말들을 자신만의 비밀로 꾹꾹 눌러 담는 법을 배우며 수다로 쏟아내던 강박증에서 해방된다. 기정은 고등학교 동창 조경선(정수영)의 동생 태훈(이기우)을 만나면서 사랑의 갈증(기정)과 연민의 시선(태훈)으로 묶인 서로를 해방시킨다. 목이 부러진 장미와 잘못 채워진 단추는 이미 이들이 집착에서부터 벗어났다는 걸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해방일지' 식의 해피엔딩이 더욱 크게 마음을 뒤흔든다.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함 대신 소소한 변화를 보여주며,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이들에게 거창한 변화보다는 저마다 힘들어하는 이유를 찬찬히 짚고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단초를 찾게 해 준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에 공감할 수 없거나 이해되지 않는 게 어쩌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는 16회를 앞에서 이끌어간 김지원과 손석구의 케미는 정말 대단하다. 이번에도 작품 선구안을 입증한 김지원은 현실에 대한 무기력함과 무욕이 가득한 염미정의 얼굴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손석구는 구씨를 마성의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표현해 '구찌보다 구씨'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보여준 이민기, 이엘의 연기도 진한 여운을 안긴다. 이민기는 자신의 동경과 180도 다른 현실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눈동자와 표정으로 공감대를 이끌어냈고, 이엘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랑지상주의자를 귀엽게 풀어내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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