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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13. 2022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느 가족'

영화 '브로커' 리뷰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한국 영화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던 탓일까. 그가 세상에 내놓은 걸작 리스트들을 떠올려본다면, '브로커'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한국 영화배우들과 좋은 시너지를 보여주면서 훌륭한 연기 합을 이끌어낸 건 칭찬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미혼모 소영(이지은)과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 세 사람이 예기치 못한 관계를 맺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정식 개봉하기 이전에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브로커' 또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이전 작품에서 담아냈던 것처럼 '가족'을 테마로 삼고 있다. 특히 혈연으로 엮여있지 않은 상현과 동수, 소영-우성 모자, 몰래 보육원에서 탈출해 차량에 숨어든 꼬마 해진(임승수)까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 구성원은 전작인 '어느 가족'의 뒤를 잇는 '유사 가족' 2편을 연상케 한다. 


다만, 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을 포함,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작 '가족 영화'들과 비교하면 '브로커'는 분명 아쉬운 지점이 보인다. 그동안 가족 구성원 간 관계와 가족이라는 집단의 실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사회 안에서 가족의 의미 등 화두를 던지면서 정교한 각본과 연출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브로커'는 비슷한 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허점이 드러난다. 



'브로커'가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은 유사 가족을 맺은 상현, 동수, 소영 이들의 행동이나 생각 등이 납득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 생명을 금전거래를 하려고 시도한 범죄는 명백하며 이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며 윤리성을 지키긴 하나, 이들의 행보가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엔 당위성 등이 부족하다. 한 예로 자신을 비난하는 형사 수진(배두나)에게 반박하는 소영의 "아기를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아기를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 대사는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래서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미적지근한 기운을 느낀다. 물론 이것은 이전까지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보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명성과 높은 기대치가 있기에 어느 감독들보다도 평가가 까다로워진 것. '브로커' 속 캐릭터들에게 자기 연민이 없고, 이들이 딱하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낙관적으로 그려내진 않았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소영이 한 방에 누운 상현, 동수, 우성, 해진에게 차례대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뭉클함을 선사한다. 


'브로커'의 장점은 확실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에서 나왔던 배우들 케미보다도 더욱 시너지가 크다는 점이다. 송강호는 남우주연상 수상자답게,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로 극 전체 분위기를 잘 이끌어간다. 그의 파트너 강동원의 인간적인 냄새와 두 톱배우의 아우라에 기죽지 않고 열연을 펼치는 이지은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 이형사(이주영)와 함께 상현, 동수, 소영의 뒤를 쫓는 수진을 연기한 배두나의 얼굴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앞서 언급한 세 캐릭터에 비해 전사가 적게 드러났던 점과 첫 장면에서 우성이를 안고 베이비 박스에 넣어줄 때 복잡 미묘한 표정부터 베이비박스 일당을 쫓으면서 서서히 변하는 생각과 감정선들이 매우 궁금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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