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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27. 2022

청출어람의 길은 매우 어렵도다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 리뷰

순자 '권학' 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청취지어람이청어람(靑取之於藍而靑於藍)'. 사자성어로 줄이면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 염료는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의미로, 현대에선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경우로 많이들 비유하는 말이다. 작품으로 따지면, 원작을 초월한 리메이크작이 여기에 해당된다. 파트 1까지 공개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청출어람이 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시리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흥행성을 입증한 '종이의 집'에 요즘 주목받고 있는 'K-콘텐츠'가 덧칠하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공개 전부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한국판 '종이의 집'은 '공동경제구역'이라는 부제를 추가하면서부터 원작의 뼈대를 유지한 채 한국적인 색채를 거침없이 덧입힌다. 근미래인 2026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와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공동경제구역에 자리 잡은 조폐국에서 새롭게 찍어내는 화폐 4조 원을 털겠다는 각색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미래에 맞이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 중 하나이기에 구미를 당기기엔 충분하다. 


남북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간다는 상황에 맞춰 재각색한 캐릭터들의 성향이나 관계성도 꽤나 눈여겨 볼만 하다. 원작처럼 교수 일당과 경찰, 그리고 조폐국에 인질로 잡힌 이들 간 치열한 머리싸움을 유지하면서 남북한 사람으로 뒤섞으면서 보이지 않는 경계를 심어놓는다. 경찰 협상전문가 선우진(김윤진)과 북한 특수요원 출신 차무혁(김성오) 간 복잡미묘한 분위기 속 공조나 남쪽과 북쪽 출신 사람들 간의 견제를 부추기는 베를린(박해수)의 계략 등이 그 예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 구성임에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첫 단추를 이상하게 끼워 넣었다. '종이의 집'의 히로인 도쿄(전종서)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겨 듣는 북한의 아미(방탄소년단 팬)로 소개하는 점이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다가온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방탄소년단의 인지도와 K-팝을 사랑하는 글로벌 팬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듯한 설정이다.  


시작부터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나와서인지, 6회까지 시청하는 내내 시청 방지턱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K-케이퍼 무비' 특유의 고질병 중 하나로 일컫는 '선수입장'은 다행히 나오지 않았으나, 남북 관계를 다뤘던 이전 작들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요소들이 많다. 예를 들면, '북한은 대한민국보다 뒤떨어진다'는 편견을 깔고 도쿄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와 문화 등에 선망하는 모습 등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조폐국을 털 강도단과 일부 캐릭터들의 설정,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톤 앤 매너도 납득되지 않는 구석들이 많다. 원작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교수를 연기한 유지태는 대규모 범죄를 설계하고 강도단을 통솔하는 천재적인 지략가, 선우진과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내야 할 양면성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모호한 뉘앙스와 어조는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로 전락한 느낌이다. 


강도단의 핵심인 도쿄로 분한 전종서도 마찬가지. 그동안 남다른 연기력으로 장악했던 것과 달리, 통통 튀어야 할 도쿄에게서 그만의 매력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 압도적인 비주얼에 반해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덴버 역의 김지훈과 터프하고 털털했던 원작 나이로비는 온데간데없고 애매한 나이로비로 연기하는 장윤주도 여기에 속한다. 


원작의 아우라를 뛰어넘지 못하고 아쉬운 완성도를 보여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 아직 반전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다. 하반기에 공개 예정인 파트 2가 있기 때문. 그러나 파트 1에서 발전하지 못한 연출력과 구성이라면, 청출어람하긴 더욱 어려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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