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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11. 2022

신인감독이 4년간 공들여서 가꾼 숲

영화 '헌트' 리뷰

올해 여름 텐트폴 BIG4 마지막 주자 '헌트'가 드디어 공개됐다. 개봉 전 기대치가 매우 낮았고, 초청받았던 칸 영화제에서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BIG4 중 가장 수작이었다. 과연 이정재가 4년 간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고쳐 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화 '헌트'는 '신인감독' 이정재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이며, 동시에 처음으로 각본에 참여한 작품이다. '청담부부'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한 영화에 동반출연했다는 점, 그리고 1980년대 제5공화국 안기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헌트' 또한 다른 첩보 액션 영화들과 비슷하게 조직 내에 숨어든 첩자를 색출해야 하는 미션 속에서 보이지 않는 스파이 때문에 서로를 견제하는 두 인물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이야기가 주류다. 익숙한 서사처럼 보이나 기시감을 느낄 수가 없다. 스파이 '동림'의 정체를 추적하는 동안 박평호와 김정도의 감정 및 심리 변화, 이들의 리액션 등이 계산이 딱딱 들어맞아가는 것처럼 훌륭한 짜임새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


시작을 알리는 워싱턴 테러 사건부터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하나하나 따라가다가 엔딩에 다다르면 두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됐고, 왜 이들이 이 장면이 이런 얼굴을 띠는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반전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모든 게 보인다. 마치 나무만 보고 계속 따라갔더니 잘 가꿔진 숲이 등장한 격이다. 신인감독 이정재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다.



첩보 '액션' 스릴러인 만큼, '헌트'는 총 제작비 200억 원에 걸맞은 액션 스퀸스들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그런데 이 액션 하나하나가 단순히 관객들에게 엄청난 물량공세를 과시하기 위해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축에 서 있는 박평호와 김정도의 심리 및 반응을 대변하고 있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창의적인 액션은 아닐지라도, 묵직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잘 반영된 액션인 건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헌트'는 제5 공화국인 1983년 한국과 안기부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이나 6월 민주 항쟁의 해인 1987년 혹은 그 이후 시기를 이야기로 그려낸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그리고 있어 '왜 하필 이 시기일까'라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1983년 전후 한국에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해다. 아웅산 테러부터 동백림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미그기 귀순 사건 등 방대한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스피디하게 아우르면서 쾌속 전진한다. 이 부분이 '헌트'의 또 다른 매력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아는 이들에겐 더욱 영화에 빠져들 수 있지만,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른다면 서사 진행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지점들이 보인다. 칸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던 반응 또한 한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기에 나왔을 것이다.


 23년 만에 '헌트'를 통해 한 앵글에 등장한 이정재와 정우성은 "역시나"였고, 두 베테랑 배우의 내공이 빚어내는 쫀쫀한 긴장감과 묘한 브로맨스 케미는 스크린을 장악한다. 두 주연배우의 오른팔로 등장하는 전혜진과 허성태 또한 네임밸류에 어울리는 존재감을 내뿜는다. 또 감독 이정재의 인품을 자랑하듯, 카메오 출연한 황정민, 이성민부터 초특급 단역인 주지훈, 김남길, 박성웅, 조우진까지 충무로에 내로라하는 배우 라인업 구경도 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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