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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20. 2021

5. 한여름밤 프라하의 짧은 꿈

2012년 7월 20일~21일 기록 재구성

회색빛 하늘 위로 터키 항공 여객기가 날고 있었다. 기내 모니터 지도는 국경을 넘었다고 알렸다. 비행기가 오스트리아 상공을 지나갈 때만 하더라도 맑은 파란색이었는데, 체코 영공에 들어오자마자 신기하게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기세였다. 동체 아래에는 산과 들이 선명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집들은 점으로 찍은 듯 하나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안내방송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목적지 체코 프라하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여행계획을 세우면, 종종 여행할 지역 혹은 장소를 1박 2일로 잡을 때가 있다. 그만큼 짧게 다녀와도 될 정도로 중요도가 낮다는 않다는 의미다. 나에게 체코 프라하가 그런 존재였다. 터키에서 유럽 대륙으로 쉽게 건너갈 수 있는, 하루 만에 둘러봐도 부담이 없는 후보군들 중에서 프라하가 레이더망에 걸렸다. 그때는 스카이다이빙 존재를 몰랐고, 체코보다 다른 국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짧은 일정인데 반해, 준비과정은 번거로웠다. 당시 이스탄불-프라하행 항공편이 터키 항공 하나였다. 요즘에는 스카이플래너, 구글플라이트 등 앱이 발달해 버튼 몇 번 누르면 금방이었으나, 2012년은 지금처럼 간단 편리하진 않았다. 또 여행을 준비하던 나 자신이 쪼렙에다가 직접 두 발로 뛰어 발품 파는 타입이었다. 예매된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터키 항공사 측과 손짓발짓 다하면서 영어로 통화도 했고, 터키 항공 한국지점이 국내에서 딱 하나 서울 시청역 부근에 위치했다는 것. 손발이 고생한 덕분에 문제없이 잘 해결됐다.  


10시 57분,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프라하 초행자는 공항 출구 방면에 자리 잡은 메트로 티켓 매표소에 섰다.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직원에게 뮤제움 역까지 어떻게 가냐고 영어로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다이내믹한 몸짓과 한껏 흥분된 목소리 속에 숨은 몇몇 단어를 캐치해 "공항 앞 버스를 타고 메트로 종점에서 하차하면 된다"고 눈치껏 알아들었다. 안전하게 뮤제움 역에 위치한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



짐을 던져놓고 프라하 중앙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프라하를 시작으로 4주 내내 두고두고 사용할 유레일 패스를 개시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한국처럼 신속, 정확하게 개시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흔한 유럽 여행 초행자의 착각이었다. 역내 국제 인포메이션 부스는 어찌된 일인지 북새통을 이뤘다. 이렇게 줄이 길다고?  


내 차례가 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렸으나 앞줄이 전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행객 두 명이 역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 자신들이 가야 할 목적지 티켓을 예매했는데 누락돼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면서 조금 짜증난 상태였는데, 그들의 입장을 알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미간을 찌푸리며 두 여행객들에게 빨리 비켜라고 눈에 힘을 주며 노려봤다.


4, 50분 기다리다 내 차례가 왔다. 여권을 보여주며 신원확인을 마치자 역무원은 개시를 알리는 도장을 찍어줬다. 2012년 7월 21일부로 유럽 전역을 누빌 수 있는 통행권이 내 손에! 기쁜 순간도 잠시, 중앙역에서 나올 때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하늘에 구멍이 뚫리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다행히 접이우산을 챙겨 오긴 했으나, 비는 치명타였다. 도보가 유일한 수단인 뚜벅이들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격이었으니까. 억수로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바츨라프 동상부터 바츨라프 광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삼거리까지 거센 물줄기로 만들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다행히 빗줄기는 오래가지 않았고, 두 발로 걸으며 프라하 한바퀴 돌아보는 계획은 속행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나눠준 지도를 참고해 화약탑-첼레트나 거리를 거쳐 구시가 광장에 단번에 도달했다. 비가 막 그쳐서였는지 붐빌 것 같았던 광장 주변 인파는 적당한 수준.


구시가 광장을 지키고 있는 천문 시계탑이 눈에 띄었다. 두 시계공 하누쉬, 미쿨라슈와 수학자 얀 신델의 합작품으로 알려진 천문 시계는 화려한 도시 마크와 황도 12궁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판 고급미가 느껴지는 기호, 천동설과 지동설을 담아낸 해와 달 움직임까지 표현해냈다. 이미 600년 전에 글을 잘 모르는 농민들부터 귀족, 왕까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맞춤형으로 제작했다니. 이들의 세심함이란.


지금은 매 정각마다 볼 수 있는 천문시계 정각 퍼포먼스를 보려고, 탑 꼭대기에 설치된 전망대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0분 전부터 기다린 정각 퍼포먼스의 결과물은 기다린 시간에 비해 다소 허무했다. 인간은 죽음 앞에 부질없으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를 15초 안에 표현하다 보니 단번에 캐치하기 힘들었다. 사람들 눈에는 호롱불을 든 해골과 이름 모를 여러 인형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만 보일 뿐.


천문 시계를 기준으로 양 옆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오른쪽은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는 매표소, 왼쪽은 전망대로 올라가는 문이다. 티켓을 산 뒤 왼쪽 문에 들어서자 입구를 지키는 아저씨는 조그마한 꼬리표를 하나 손에 쥐어주며 환영했다. 꼬리표에는 프라하 방문을 환영한다며 구글 번역기 어투가 묻어나는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단번에 프롬 사우스 코리안인걸 맞추다니. 이날 유독 프라하 구시가 일대를 누비면서 매우 익숙한 언어들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단체 패키지로 방문한 한국인 단체 관광객, 자유롭게 여행하는 한국인 방랑자들이 많았다. 이때만큼은 한국 내 프라하 마을로 잠깐 착각했다. 아저씨가 쉽게 맞출 법도 했다.


전망대 정상에서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프라하 일대를 구석구석 살폈다. 전망대까지 올라오는 사이 광장 일대는 붐볐다. 비가 그친 효과가 있었는지, 건물 내부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열댓 명 이상 뭉쳐있으면서 깃발 하나 들고 있다면 투어 관광객들이었다. 다정한 커플이나 친구들, 쓸쓸한 솔로도 또렷하게 보였다. 또 건물 지붕 색깔들이 프라하 구역들을 나누는 듯했다. 빨갛고 주황빛을 드러내는 삼각지붕과 각진 건물들은 옛날부터 자리 잡은 구시가지, 그 뒤로 곡선형이나 직사각형으로 하늘 높이 솟은 건물이 자주 보인다면 신시가지였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라 오랫동안 머릿속에 가득 저장하려고 눈에 잔뜩 힘을 줬다.


카를교 부근, 프라하성 가는 길. 다시 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게릴라성 강우를 피하려고 재빨리 건물 속으로 들어가거나 우산 펴기에 바빴다.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었고, 때마침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M자 간판이 보였다. 맥도날드에 들어서자,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1유로짜리 햄버거를 먹으며 기다렸으나,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빗 속으로 뛰어들어 프라하성으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옅은 회색 제복을 입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채 정문을 지키는 경비대 2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라하성 입구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대통령 관저가 프라하성 내부에 있었기에 경비대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프라하성 영역에 발을 들이자, 다시 한번 비가 멈췄다. 정말 다행이었다.


매년 약 180만 명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큼, 프라하성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뾰족한 비투스 대성당과 궁전들, 넓고 고요한 정원까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시절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저 발이 가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공작 커플과 마주쳤다. 프라하성 정원의 주인인 듯처럼 곱고 화려한 깃털을 과시하며 도도하게 걷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손을 많이 탄 모양인지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나 또한 먹을 게 있을 줄 알고 주변을 계속 서성였다. 미안한데, 너한테 줄 게 없단다.


프라하성을 한바퀴 돌고 온 뒤 숙소로 곧장 돌아왔다. 와이파이 지역에 들어오자마자 카톡 알람이 울렸다. 반가운 알람이었다. 선희의 카톡이었다. 그가 동행하는 친구와 함께 프라하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선희는 반년 전 유럽 배낭여행 갈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했던 회사에서 만난 동료로 나보다 1주일 늦게 입사했다. 나는 개발한 앱을 각종 휴대폰 기기를 테스트하면서 모니터링하는 업무였고, 그는 전공을 살려 프로그래밍 및 전산 정리 담당이었다. 같은 알바생 신분이고 바로 옆자리이다 보니 대화 나눌 일이 많았다. 하루는 나에게 이런 걸 물었다.


선희: 오빠는 나중에 알바로 돈 벌어서 뭐할 건데?
나: 유럽 배낭여행하는데 몽땅 쓰려고.
선희: 오, 그거 괜찮겠는데! 언제 가는데?
나: 내년 여름에 가려고. 어디어디 갈지 대략적인 코스를 짰어.


유럽 이야기가 흥미로웠는지, 복학 이유로 먼저 퇴사한 선희는 자신 또한 유럽여행 간다고 나중에 근황을 알렸다. 출국일자도 나보다 2주 빨랐고, 독일에서 출발해 동유럽으로 가는 코스였다. 그러던 중 프라하에서 하루가 겹쳐 만나자는 약속을 잡게 됐다. 


한국 통신사 영향력 없이 제한된 와이파이 구역에 의존한 채 연락을 취한다는 건 인고의 시간이었다. 오후 6시까지 중앙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선희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 또한 낯선 프라하 지리를 몰라 한참 헤매다 왔단다. 어쨌든 상봉했으니 좋은 거 아닌가. 선희는 자신과 동행 중인 친구 희연을 소개했다. 나와 동갑이며,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하에 왔으니 역시 체코산 맥주가 저녁에 딱이라 생각했다. 체코도 독일 못지않게 맥주가 유명하고, 1인당 맥주 소비량 세계 1위를 달성할 만큼 맥주에 죽고 사는 나라다. 우리는 각 맥주 1잔과 술에 어울리는 이름 모를 고기 메뉴들과 꼬치를 주문했다.  


저녁 테이블 위로 오가는 대화는 자신들이 지나온 여행 에피소드 이야기가 주류였다. 선희 일행은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뉘른베르크 등에서 겪었던 일들을 털어놨고, 나 또한 체코에 오기 전 이스탄불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전했다. 그러면서 각자 아르바이트 그만둔 뒤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토크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재밌는 이야기들은 아니었으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공기와 반짝반짝 빛나는 프라하 불빛 때문인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산책할 겸 프라하 야경 구경할 겸 시가지를 걷기 시작했다. 변덕 심했던 낮과 달리 저녁은 잔잔했다. 그래서인지 해가 사라진 뒤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지나가는 길에 몇몇 사람들은 중세시대 코스튬을 하고 있었다. 오픈 대기 중인 한 클럽 앞에는 비슷한 복장을 한 무리들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클럽 복장 코드였나 보다.


반나절 먼저 왔다고, 내가 이들을 이끌고 프라하 일일 가이드를 자처했다. 내맘대로 여행했으니 가이드가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 정확한 건 명소 및 핫스팟의 이름뿐이며, 여기에 아무 말이나 늘어놓으며 그럴싸하게 갖다 붙였다. 이를 듣는 선희와 희연은 깔깔 웃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이 정확하다고 신뢰하진 않았을 것이다. 머나먼 객지에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을 만나 반갑고 즐거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희와 희연은 어디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말을 건넸다. 그들의 제안을 넙죽 받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상 그럴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프라하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코에서 하루이틀 더 머물 예정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1박 2일로 짧게 잡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하고 나 스스로 자책했다. 누가 여행을 숨 막히게 타이트하게 짠단 말인가. 여행은 여유를 즐기는 게 생명이거늘. 그날 밤따라 뮤제움 역 일대를 비추는 불빛들이 아른거렸다. 마치 나의 미련을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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