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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30. 2022

마릴린 먼로를 모욕하지 마세요

영화 '블론드' 리뷰

실존 인물을 창작물로 재가공할 때에는 항상 뒤따르는 고민 지점이 있다. 어느 선까지 창작의 자유를 허용할 것인지, 혹시나 지나치게 왜곡하는 부분은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실존 인물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창작자의 의도가 잘 반영되는 것이 최상일 테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20세기를 대표한 배우 마릴린 먼로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는 후자 쪽이다.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전기처럼 보이겠으나,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영화화했다. 즉, 역사적 사실을 따르는 전기소설이 아닌 창작자의 상상으로 그려진 마릴린 먼로의 모습과 이야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사전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당연히 실제 이야기로 오해하게 만든다.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가 남긴 빛나는 업적보다 사생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사망한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그의 스캔들 등이 여전히 호사가들의 관심사이며, 영화는 마릴린 먼로 이름에 가려진 그림자에 상상력을 더하기 시작한다.


총 16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서 '블론드'는 노마 진(아나 데 아르마스/릴리 피셔)이라는 어린 소녀가 마릴린 먼로가 되어 활동하는 과정 내내 '불행 포르노' 식으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학대와 아버지의 부재로 발생한 중증 애정결핍,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가득 찬 불안한 여성으로 말이다. 그에 반해 왜 마릴린 먼로가 불안한 심리 상태를 가지게 됐는지 캐릭터 빌드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보는 이들은 마릴린 먼로의 행동과 심리에서 공감할 지점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연출을 맡은 앤드루 도미닉 감독의 선을 넘는 자극적인 연출력도 '블론드'를 끊임없이 깎아내린다. 마릴린 먼로가 195, 60년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고 여러 남성들과의 스캔들이 얽혀 있긴 했으나, 이를 개연성이 없는 포르노처럼 묘사하며 끊임없이 벗기는 데에만 공 들인다. 캐스(찰리 채플린의 아들-자비에르 사무엘), 에디(에드워드 G. 로빈슨의 아들-에번 윌리엄스)와의 쓰리섬부터 구강성교까지 전개될수록 불필요한 장면들이 투머치하다.


이 때문에 마릴린 먼로로 분하기 위해 역대급 싱크로율을 펼쳤던 아나 디 아르마스의 노력이나 195, 60년대 그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스러운 미장센 등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지저분한 불행과 포르노의 결합이 망쳐놓은 셈이다.


결정적으로 '블론드'가 간과한 부분은,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황색언론 수준에 가까운 시야와 연출법에 치중한 나머지 그의 영리함과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을 날려버렸다. 결국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실존 인물이어도 창작자의 손을 거쳐 다양한 얼굴과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고 창작자 혼자 심각하게 자아도취했다면, 그 어떤 누구도 작품성이나 메시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됐던 '블론드'는 이후 넷플릭스가 숨기고 싶은 망작이 될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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