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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Oct 23. 2022

나, 이런 거 좋아했네?

영화 '20세기 소녀' 리뷰

 


지나온 시간을 향한 추억의 힘은 매우 무섭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더욱 또렷하게 빛을 내면서 기억 공간소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첫사랑의 추억은 세월이 지날수록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를 영화로 담아낸 '20세기 소녀' 또한 비슷하다.


'20세기 소녀'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보내준 20세기 추억이 담긴 낡은 비디오테이프 소포를 받은 나보라(김유정/한효주)의 풋풋한 10대 시절을 소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보라는 심장수술을 받으러 외국으로 떠난 절친 김연두(노윤서)의 짝사랑 상대 백현진(박정우)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기 위해 백현진의 절친 풍운호(변우석)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지게 된다.


그러다 나보라의 눈에는 풍운호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한 두근거림이 찾아온다. 그러던 중 외국에서 돌아온 김연두의 진짜 짝사랑이 풍운호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정이 흔들리는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다.


겉모습은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나, '20세기 소녀'는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갑자기 등장한 이성으로 인해 우정이냐 사랑이냐 갈등하는 절친, 삼각은 기본이며 사각까지 퍼져가는 관계 속에서 풋풋하고 순수한 감정으로 가득 채우며 설렘과 아픔을 그려내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클리셰로 가득 채운다. 



게다가 VHS 비디오테이프, 공중전화, 삐삐, 홈 캠코더 등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기 전 그 사이 시점을 대변하는 물품들로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향수 또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한 다른 멜로 영화에서 많이 써먹어왔기에 뻔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그런데도 '20세기 소녀'는 알고도 설렐 수밖에 없는 치트키 '첫사랑'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기시감 느껴지는 스토리에서 저마다 경험한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과몰입하게 만들어 "나 이런 거 좋아했네?"라고 깨닫게 만든다.


'20세기 소녀'의 또 다른 치트키는 주연을 맡은 김유정의 존재감이 여느 작품들보다도 극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유정 특유의 싱그럽고 풋풋한 매력으로 빚어낸 10대의 감정선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을 울고 웃기게 만든다. 잠깐 출연이긴 하나, 한효주 또한 성인이 된 나보라 캐릭터를 잘 이어받아서 섬세하게 풀어낸다.


'20세기 소녀'가 나보라 1인칭 시점이다 보니 풍운호를 비롯한 나보라와 엮인 주요 인물들의 깊이 있는 서사나 디테일한 감정선이 더 살아나지 못한 게 아쉽다. 이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됐더라면, '20세기 소녀'의 치트키가 더욱 돋보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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