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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Nov 24. 2022

역사의 공백은 이렇게 채우는 것

영화 '올빼미' 리뷰

"보이는 게로구나"


그렇다. 영화 '올빼미'를 보다 보면 주맹증을 앓고 있는 천경수(류준열)가 밤을 맞이할 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영화를 즐길 거리가 점점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만드는 역사실록에 실린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인조실록'에는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가 의문사했을 당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현재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추측들이 따라붙는다. 사망원인이 명확하게 적혀있지 않은 역사 속 공백에서 '올빼미'는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서 출발한다.


영화는 소현세자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인조 23년(1645년) 4월 어느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어의 이형익(최무성) 눈에 띄어 내의원 침술사로 발탁된 천경수는 청나라에서 귀국한 소현세자(김성철)의 침술 치료를 맞게 됐고, 그러던 중 원치 않게 세자의 사망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소현세자 사망까지는 제법 긴 서사가 앞에 깔린다. 왜 소현세자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고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가 그 현장에 있게 됐는지 등을 설명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과도 같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드라마적 요소인데도, 촘촘한 서사가 충분히 메꿨다.



밤이 되고 불빛이 사라지면서 올빼미처럼 움직이는 경수와 그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장면들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어둠 속에서 침을 놓고, 오밤중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달아나는 경수의 일거수일투족 그 자체가 서스펜스로 느껴질 정도. 보는 이들이 경수가 된 것처럼, 깜깜한 영화관에서 바라보면서 경수의 예민한 오감을 느끼게끔 여러 장치를 깔아 두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독살설'이라는 상상력까지 더해지면서 스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완성된다.


'낮에는 앞을 볼 수 없고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주맹증 설정은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 진실을 놓치지 않는 눈으로 봤으면서도 못 본 척, 귀로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살아야 할 때가 많은 오늘날을 반영하기도 한다.


주인공을 맡은 류준열은 이번에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관객들이 경수의 시선을 천천히 따라갈 수 있게 담백하게 리드하면서 때로는 뒤통수를 때리는 한 방을 날린다. 인조로 분한 유해진은 '올빼미'가 공개되기 전 "왕 역할이 어울릴까?" 하는 의심을 단번에 지운다. 열등감과 불안감 등으로 가득 찬 뒤틀린 임금의 초상을 떨리는 얼굴 근육 만으로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후반에 터지는 폭발력은 가히 압권이다. 여기에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안은진까지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력 덕까지 더해지니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올빼미'에서 그리고 있는 소현세자 사망사건의 내막은 허구다. 이를 두고 역사왜곡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팩션 사극을 표현하는 데 있어 크게 선을 넘는 부분은 없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사에 생긴 공백을 영리하고 쫀쫀하게 잘 채워넣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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