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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10. 2022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리뷰

올해 2개의 '피노키오'가 공개되기 전부터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두 개의 글로벌 OTT 플랫폼(디즈니+, 넷플릭스)에서 두 명의 거장(로버트 저메키스, 기예르모 델 토로)이 '피노키오' 연출을 맡았다. 지난 8월에 먼저 공개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피노키오'는 2D 애니메이션은 겨우 3D로 구현시킨 데 불과해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그에 반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관객들의 니즈를 제대로 부합시켰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동화 '피노키오'를 세계 대전이 발발하던 191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삼았다. 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 전역은 잔혹한 광경들이 곳곳에 벌어졌고, 그 속에서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파시즘이 무럭무럭 자라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판의 미로-오필리어의 세 개의 열쇠'에 이어 다시 한번 파시스트 정권 속에서 겪는 고난을 '피노키오'에서 그려내고 있다.


파시즘이 만연했던 시대적 배경을 필두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그동안 대중에게 익숙하게 다가왔던 '피노키오'의 이야기와 구성에서 계속 빗겨나간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목각인형 피노키오(그레고리 만)를 본 파시스트 시장 포데스타(론 펄먼)는 그를 소년 병사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당시 파시즘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조했던 무솔리니 독재 정권을 떠올리게 만든다. 


포데스타 못지않게 호시탐탐 피노키오를 서커스로 끌어들이려는 발데 백작(크리스토프 발츠)의 검은 속내도 눈의 띈다. 맑고 투명한 피노키오의 순수함을 이용해 자본주의로 옭아매려는 모습을 통해 그 시절의 또 다른 이면을 표현해낸다. 



타인의 손에 의해 탄생한 피노키오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본인의 삶을 위해 남을 도구로 쓰는 이를 벌하고 도구로서 살아온 사람들을 주체적으로 살게끔 구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제페토(데이비드 브래들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카를로를 대신해 만든 피노키오이지만, 자주적인 선택을 취하며 악행을 전복하고 타인을 조력하기까지 해 울림을 준다.


이와 더불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도 만든다. 피노키오를 카를로의 대체로 생각하면서 죽은 아들처럼 키우려는 제페토는 결국 피노키오가 다른 개체라는 걸 인지하게 되고 그의 고유성을 존중하게 된다는 과정 또한 담겨 있다. 어찌 보면 개인 개성이 중요시되는 오늘날을 반영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더불어 불사의 몸인 피노키오가 무한한 삶을 포기하고 소중한 감정을 선택하는 지점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많은 이들이 2022년에 만나고 팠던 '피노키오'가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까.


기술적인 면에서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기괴한 미술 디자인과 음악,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 등은 감독이 표현하려던 음울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낼 수 있었다. 


끝으로, 미술 디자인과 스톱모션, 음악이 잘 어우러져 기괴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드러냈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 만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희망의 새싹 같은 감성이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여기에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크리스토프 발츠, 틸다 스윈턴, 핀 울프하드, 케이트 블란쳇 등 할리우드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아 영화의 흡입력을 배가시킨다. 


이번에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피노키오'를 택한 기예르모 델 토로, 이전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상당히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비극과 역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동화의 힘으로 이를 묵직하게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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