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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22. 2022

물 젖은 장작에 뜨거운 불 붙이기

영화 '영웅' 리뷰

관객들에게 섭씨 100도 넘는 뜨거움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채울 영화 '영웅'은 정작 미적지근하다. 물 젖은 장작에 뜨거운 불을 붙이려고 시도하나, 끝끝내 뜨겁게 타오르지 못한다.


한국 대표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웅'이 뮤지컬 무대를 넘어서 스크린으로 재탄생했다. '영웅' 안중근 역의 대표 얼굴로 유명한 배우 정성화도 작품과 함께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영화로 바라보는 정성화의 안중근이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을 끌기 충분하다. 여기에 김고은, 나문희, 조우진,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 등 화려한 배우진이 힘을 보탠다.


정성화가 표현해 낸 안중근은 영화 '영웅'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오랫동안 안중근을 연기한 경력에서 발휘되는 탄탄한 연기력과 가창력은 관객들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뮤지컬 영화의 중요 포인트인 음악 신과 연기 신 사이를 훌륭히 전환한다. 그가 나오는 신은 확실히 생생한 현장감도 느껴진다.


안중근으로 분한 정성화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배우는 김고은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드러난 뛰어난 노래실력은 '영웅'에서 십분 발휘됐고, 여기에 쇳소리까지 내면서 나라를 잃은 설희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많지 않은 분량이나 투옥된 아들 안중근을 향한 심경을 한껏 살린 어머니 조마리아 역의 나문희의 내공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영화로 재탄생한 '영웅'의 장점은 이게 끝이라는 게 함정이다. 우선 가장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너무나 의식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끓어오르는 캐릭터들의 감정들을 강제 이입시키려고 하는 지점들이 뻔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강박관념처럼 비장하거나 중요한 신 앞뒤로 소소한 웃음코드가 들어간 장면, 설정들이 따라붙는다. 영화에 몰입해서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데, 되려 차갑고 짜게 식어버린다.


이와 맞물려 손발이 맞지 않는 조연들의 불협화음도 거슬린다. 배우들 네임밸류들을 하나하나 살피면 연기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으나, 연출자의 디렉팅 문제인지 뮤지컬 영화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영화 중간에 '만두 찬가' 같은 생뚱맞은 넘버가 튀어나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또 극 중 인물들의 감정 표현도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까지 과정은 실제 역사를 배우면서 이해하고 있으나, 영화 '영웅' 내에서 평화를 주창하는 그가 왜 누군가를 죽이려고 총을 들어야 했고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드러나질 않는다. 이를 '영웅' 대표곡인 '누가 죄인인가' 가사로만 전달하는 데 그친다. 


결론적으로 '영웅'은 일제강점기의 영웅 안중근이라는 실존 인물의 상징성에 크게 의존한 채 깊게 고심해서 만든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화하면서 원작 뮤지컬의 강점인 노래와 안중근으로 분한 정성화의 존재감은 인정할 부분이긴 하나, 뮤지컬과는 차별성이나 완성도 면에선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뮤지컬 영화 장르에 용기 있게 도전했다는 점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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