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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24. 2022

관객들을 한순간에 바보 만드는 추리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리뷰

이번에도 '나이브스 아웃'은 신선했다. 전편이 후더닛(whodunit)의 정석을 보여주며 21세기에 맞게 잘 복원시켰다면, 속편인 '글래스 어니언'은 이를 비틀어 새로운 매력을 선사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3년 만에 속편으로 컴백한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주인공인 명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억만장자 마일스(에드워드 노튼)의 지중해 섬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초대받은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편에 이어 에드워드 노튼, 자넬 모네, 캐서린 한, 레슬리 오덤 주니어, 케이트 허드슨, 데이브 바티스타 등 화려한 배우 라인업으로 꾸렸다.


쌀쌀하고 우중충했던 뉴잉글랜드를 벗어나 따뜻하고 밝은 색채로 가득 찬 에게 해로 주무대가 바뀌어서인지,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마일스에게 초대받은 클레어(캐서린 한), 라이오넬(레슬리 오덤 주니어), 버디(케이트 허드슨), 듀크(데이브 바티스타)가 함께 힘을 모아 스테레오그램을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고, 이들이 섬으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과연 사건이 언제 벌어질까 기다리게 만드는 맛이 있다. 


이와 맞물려 주인공 브누아 블랑의 포지션도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예리한 추리력으로 서서히 조여 오는 맛을 선물했다면, 이번에는 특유의 남부 사투리 억양이 부각된 채로 인간적인 면을 많이 드러낸다. 너스레를 떨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번뜩이는 추리를 뽐내는 이른바 허허실실 같은 매력으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그러면서 점점 퍼즐 맞추기처럼 누가 범인인지 찾아가는 후더닛 공식을 중반부부터 비틀기 시작한다. 이 물꼬를 트는 반전을 보여줌과 동시에 라이언 존슨은 롤러코스터 형식의 전개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일스와 친구들 중 누가 범인인지 추리할 때 활용되었던 클루 게임이 무용지물이 됐듯, 범인 찾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억만장자 마일스와 그의 초대를 받고 온 친구들 간 엮어있는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글래스 어니언' 부제가 붙은 이유를 비로소 설명해 준다. 까도 까도 계속 껍질이 나오는 양파 속에 감춰진 진실, 그리고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관계성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전복시키려는 또 다른 반전요소가 등판하게 된다. 영화 제목에 영감을 준 'Glass Onion'에 필요 이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이들을 비웃던 비틀스처럼, 라이언 존슨도 추리하려고 덤벼드는 관객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오로지 후더닛 스타일을 추구하고 전작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들이라면, '글래스 어니언'을 관람한 후 성이 차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석을 비틀고 블랙 유머로 표현해내는 시도는 가히 칭찬받을 만하다. 이를 맛깔나게 살리는 자막 센스도 눈에 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가 체질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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