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기록 재구성
아침 8시 40분, 페루 리마 크루즈 델 수르 버스 터미널. 한국이나 페루나 아침 시간대 버스터미널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수많은 인파가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나는 아르헨티나 트랙탑을 입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9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탈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애타는 마음에 계속 휴대폰 시계만 바라봤다.
8시 50분쯤 됐을까, 나와 키가 비슷해 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터미널 입구에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인가 보다 생각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혹시 OOO 님 맞으시죠?"라고 물어봤다. 내 목소리에 잠깐 놀라는 듯했다가 맞다고 곧장 답했다. 이 사람이 오늘 나의 이카 당일치기 여행에 함께 하게 된 여행메이트 P 누나다.
P 누나를 알게 된 건, 남미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모여있는 오픈단톡방이었다. 단톡방 내에선 24시간 쉬지 않고 여행자들의 깨알 정보들과 여행메이트 찾기, 잡담 등이 오간다. 페루 리마에서 스타트를 끊은 나는 단톡방 내에서 이제 여행 시작 단계에 접어든 뉴비급이었고, 이런저런 정보를 수급하던 중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 여행을 떠날 동행인을 찾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P 누나가 이카를 거쳐 쿠스코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
P 누나는 나보다 4, 5일 먼저 페루 리마에 입국해 페루 북부에 위치한 와라즈에서 트래킹 하다가 고산병으로 죽을 뻔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심하게 고산병을 앓았던 탓인지 아직도 얼굴이 창백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한 뒤, 버스 가장 앞 좌석에 앉아 이카로 출발했다.
오후 1시 반, 크루즈 델 수르 이카 버스 터미널. 리마에서 출발해 4시간 반동안 한국보다 더욱 편안한 남미산 고속버스를 탔더니 푹 잠을 잤다. 이카에 첫 발을 딛자마자 제일 먼저 반겼던 이들은 와카치나 사막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호객행위 하는 택시 기사들이었다. 귀신같이 이방인을 알아보고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들었다.
나와 P 누나를 태우기 위한 택시 기사들끼리의 '프로듀스 101'이 시작됐다. 저마다 이 가격에 데려다주겠다고 계속 흥정에 나섰다. 우리는 더 싼 가격이 나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목적지인 와카치나의 바나나 호스텔까지 가는 데 8솔에 가겠다는 드라이버가 등장했고, 우리는 그를 픽했다.
리마와 달리 이카는 규모가 작은 소도시였기에 중심가를 벗어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는 2차선 도로에 접어들 때 즈음, 좌측에는 택시를 서너 번 덮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래언덕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남미에 사막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거대한 모래언덕은 나의 사막 판타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거대한 모래언덕 사이로 난 2차선 도로를 지나 와카치나 사막 안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중심부까지 들어왔다. 택시기사는 마을에 도착했다고 알려주면서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투어사에 가면 버기 투어를 더 싸게 할 수 있다고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열혈 영업에 나섰다. 혹 할 만한 이야기이긴 했으나, 이카와 와카치나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던 나와 P 누나는 거리를 두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남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하는 말도 100% 신뢰하질 못했다. 택시기사를 떠나보낸 뒤, 바나나 호스텔부터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을이 작아서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P 누나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어젯밤 와라즈에서 출발하여 리마를 거쳐 이카까지 도합 12시간을 넘는 버스생활을 했으니,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이따가 투어 할 텐데 괜찮으려나 괜히 걱정됐다.
목적지인 바나나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입구 옆에 비치된 락커에 일단 짐을 넣어둔 뒤, 빈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사실 여기에 같이 오기로 했던 또 다른 일행인 Y 씨가 있었다. 원래라면 리마에서 만나야 했는데, 늦게 오는 바람에 바나나 호스텔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려야만 했다.
Y 씨를 기다리는 동안, 눈으로 바나나 호스텔을 스캔했다. 야외에 설치된 라운지 바에선 투숙객 서너 명이 술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즐겼고, 한가운데 차지한 수영장과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낮부터 파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파티 피플들 사이에서 개들은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호스텔 뒤쪽으로는 큼직한 오아시스와 야자수들이 훌륭한 배경역할을 맡고 있었다.
바나나 호스텔에 온 이유는 광활한 와카치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버기 투어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소문난 와카치나 사막 버기 투어였기에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나나 호스텔 카운터에 가격을 문의했더니 한 사람당 34솔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혹시 몰라서 주변 다른 큰 호스텔에서도 문의를 해봤다. 만약 더 싸게 하는 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옮겨도 문제는 없겠다 생각이 들어서였다. 주변을 수소문한 결과 더 받으면 더 받았지, 더 싸게 해주진 않는다는 결론을 얻고 바나나 호스텔로 최종 낙점!
그러던 와중 Y 씨가 P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카로 오는 도중에 한국인 남자 두 명을 만나서 같이 오는 중이라고 보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인원이 늘어났지만, 버기 투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오후 3시가 넘자, 한국인 남성 3명이 바나나 호스텔 입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셋 다 키는 170대 중반 정도로 보이고, 그중 빨간 체크 남방과 시커먼 뿔테안경을 쓰며 너드미가 느껴지는 남자가 Y 씨인 것 같다.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이 K 군과 J 군인가 보다. K군과 J군은 친구라는데, 지난 6월부터 페루-볼리비아 여행을 시작했고 어느덧 이카를 끝으로 돌아갈 날만 남았단다.
K와 J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호스텔 뒤편에 있는 큰 오아시스를 구경하러 갔다. 이제 남미여행을 시작하는 나머지 3명은 다음 여행지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가벼운 정보공유를 했다.
오후 4시, 드디어 대망의 버기 투어가 시작되었다. 와카치나 사막으로 출발한 버기카에는 코리안 5명을 비롯해 페루 현지인 커플 한 쌍, 영국인 친구 3명까지 총 10명이 탑승했다.
버기카는 당장이라도 모래 위를 달리고 싶어서 으르렁거렸고, 꽁무니에 달린 배출구에선 끊임없이 매연을 뿜어냈다. 작은 와카치나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버기카는 다카르 랠리에 참가한 하나의 경주차량으로 돌변해 사막을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속력을 점점 올리면서 버기카는 점점 '매드 맥스' V8로 변신했다.
버기카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울리는 와카치나 사막 위는 잿빛 구름 틈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와 반짝이는 조명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날씨는 우리 편.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높은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가 급 내리막길을 만나면 버기카는 짧은 찰나에 에어 조던처럼 공중을 날았다. 이후 바로 떨어지면서 덜커덩 거리는 쾌감은 롤러코스터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10명의 신난 비명은 버기카 드라이버를 계속 자극했고, 그는 점점 더 터프한 드라이버로 변신했다. 그 순간만큼 버기카 드라이버는 F1 레이서였다.
한 2, 30분 정도 달렸을까, 어느덧 첫 번째 샌드보드를 탈 거대한 모래언덕에 도착했다. 짜릿한 사막 드라이빙을 즐기던 10명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버기카에서 하차했다. 모두 내리자마자 거대한 사막 지역을 카메라로 담기에 바빴고, 나 또한 그랬다. '사막'이라고 하면 중동 지역이나 사하라 사막이 있는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남미에서 사막을 마주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계속 신기하게 바라봤다.
배경샷, 셀카, 단체샷 다양하게 찍고 있는 와중에 버기카 드라이버는 우리를 불렀다. 지금부터 샌드 보드를 탈 시간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반대편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드라이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모래 언덕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릴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높은 경사각들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샌드 보드를 한 손에 들고 언덕 꼭대기로 향했다.
샌드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안전하고 쉽게 타는 자세는 보드 위에 앉은 뒤 두 발을 보드 머리 부분에 놓고 두 손을 브레이크 삼아 내려가는 방법이다. 여기서 스릴을 느끼고 싶으면 보드 위에 엎드린 채 내려가는데, 이때 모래에 닿지 않게 들어 올린 두 발은 일종의 꼬리날개처럼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은 우리가 스노보드를 탈 때처럼 자세를 잡는 것인데, 이 자세로 타려면 보드가 좋아야 하고 전문 장비가 필요하다. 대부분 버기 투어와 동반되는 보드 상태가 좋지 않기에 마지막 버전은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만.
살면서 서핑이나 스노보드 한 번 타본 적 없었는데, 파도와 설원이 아닌 모래 위에서 보드를 입문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욱 흥분됐다. 보드 위에 타기 직전에 버기 드라이버가 무언가를 나에게 건넸다. 얇게 자른 초였는데, 보드 뒷면에 바르면 모래 위에서 더 잘 미끄러진다고 했다. 당구를 치기 전 큐대에 초크를 바르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모래언덕 끝자락에 앉은 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어 양손을 뒤로 밀면서 언덕 아래로 향했다. 생각 이상으로 체감속도가 빨랐고, 금방이라도 밑바닥에 꽂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옛날 눈썰매를 즐겨 탔던 몸의 감각을 되살려, 최대한 양손 브레이크를 쓰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샌드 보드에 진심인 Y 씨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액션캠 전용 헬멧을 착용한 뒤, 봅슬레이 타듯 엎드려서 모래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던 것.
그렇게 샌드보딩을 즐기다가 마지막 모래 언덕을 마주했다. 이 언덕은 무려 2층에 경사도 앞서 통과했던 언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다간 데굴데굴 굴러서 개미지옥 같은 맨 밑바닥에 그대로 꽂힐 것만 같았다.
다들 자세를 고쳐 잡고 샌드보딩을 하려는 찰나, 가운데에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P 누나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끄러져 출발했고, 곧장 2층 급경사를 모두 통과해 버렸다. 스타트를 잘 끊어준(?) 덕분에 샌드 보더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나도 이제 내려가려고 보드를 고쳐 잡았다. 옆에는 영국에서 온 남자가 한 손에는 고프로 캠을 든 채 스켈레톤처럼 엎드렸다. 모래 언덕을 내려온 뒤 그 친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할 손을 잘못짚었던 탓인지 아니면 그가 탄 보드가 문제였는지 왼손은 새빨간 피로 뒤덮여있었다. "괜찮아?"라는 물음에 그 남자는 윙크하면서 피범벅이 된 왼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오직 고프로 캠 지지대가 부러진 것만 걱정했을 뿐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샌드보딩을 타다 보니 어느덧 해는 모래 위에 반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붉은 노을 조명을 받아 옅은 빨강 파스텔색으로 물든 와카치나 사막의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내가 상상 속으로만 그리던 사막 판타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몇몇 이들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는지, 고운 모래 위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와카치나 사막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몸에 묻히려고 했다. 버기 카를 타고 돌아오면서 본 해질녘 오아시스는 고요함을 머금고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이카 마을에는 하나 둘 불빛이 등장했다.
해가 퇴근하자마자 조용했던 바나나 호스텔은 슬슬 바비큐 파티 모드로 바뀌었다. 투숙객들은 저마다 한 손에 맥주병을 쥐고 밤을 붙잡으려는 기세를 드러냈다. 이들과 달리 한국인 5인방 중 어느 누구도 호스텔의 파티 분위기를 즐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5명 모두 곧바로 다음 행선지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 P 누나와 Y 씨는 오늘 저녁에 바로 쿠스코로 넘어가는 야간버스를 타기로 예정됐고, 나를 포함한 K 군과 J 군은 리마로 돌아가는 막차를 타야 했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오.
샌드보딩이 고단했었는지, 나는 저녁 7시 반 리마로 가는 막차를 타자마자 바로 기절한 채로 뻗었다. 의식을 차렸을 때에는 버스는 어느새 리마 버스터미널까지 도착했었고,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다. 신기루 같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