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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an 21. 2023

큰 일을 하는 데 겉멋만 신경 쓰다니

영화 '유령' 리뷰

유령에게 고함 : 큰 일을 하기엔 너무 겉멋에만 신경을 썼구나.


영화 '유령'을 휘감은 겉표지는 정말 혹하게 만들 만큼 번지르르하고 화려하다. 하지만 포장지를 벗겨낸 뒤 마주하는 알맹이는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중간중간에 오글거리는 구간도 느껴질 정도다.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받게 되는 이야기. 동시에 용의자들 사이에 숨은 유령은 이를 뚫고 탈출해야 하는 사투를 담아내고 있다. 중국 마이자 작가의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공개되기 전 예고편만 접했을 때에는 스파이 유령의 정체가 누구일지 호기심을 유발하는가 싶었으나, 일찌감치 유령의 정체를 초반부에 오픈해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때문에 모두가 마피아의 정체를 다 아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마피아 게임이 되어버렸고, 누가 유령일까 추측하는 재미나 뒤에 튀어나올 반전 등은 팍 식어버려 첩보 추리의 색채를 잃어버린다. 


그래서인지, 이해영 감독은 중반부 터닝포인트를 지나는 시점부터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항일 운동으로 장르를 180도 전환한다. 액션에 제법 공 들인 티가 드러나고, 젊은 투사들의 활약상을 중점적으로 그리는 시도는 좋았으나 이는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활용했기에 색다르게 다가오진 않는다.



이와 맞물려 '유령' 용의자로 지목된 무라야마(설경구), 박차경(이하늬), 유리코(박소담), 천은호(서현우)와 이들을 호텔로 불러들여 용의자 색출에 나선 카이토(박해수) 캐릭터들의 매력도 애매해졌다. 초반만 하더라도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듯했으나, 사건이 전개될수록 자신들의 매력을 점점 잃어간다. 여기에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대사들까지 빌런으로 등장한다.


내용에선 여기저기 허술함이 느껴지나 이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만큼은 확실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하다. 전작인 '독전'에서도 이미 인정받았던 이해영 감독 특유의 과감하고 감각적인 색감 배치와 빠른 편집으로 홀린다. 또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배경음악을 덧칠해 흑색단과 유령의 분투기를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해 낸다.


앞서 언급했듯이, 화려한 겉멋만 돋보인다는 게 '유령'의 단점이다. 외관의 아름다움에만 신경 쓴 탓인지, 영화의 장르가 첩보추리인지 액션인지 드라마인지 종잡을 수 없는 맛없는 잡탕이 되어버렸다. 이와 함께 큰 일에 나선 여성 캐릭터들의 분전도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꼴이 됐다.


차라리 원작을 그대로 살렸던 영화 '바람의 소리: 유령'과 조금 더 비슷한 결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이하늬와 박소담의 노력이 헛되게 끝나진 않았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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