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Mar 14. 2023

노브레이크 복수극에 멜로 끼얹기

드라마 '더 글로리' 리뷰

(※ 파트 1, 파트 2 내용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복수 시작할 땐 나도 테이큰 같을 줄 알았지."


영화 '테이큰'처럼 인정사정없이 복수하면 좋겠지만, 문동은(송혜교)의 말처럼 이는 복수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만큼, 그의 복수는 신명 나는 칼춤을 추는 망나니처럼 서슬 퍼런 칼로 응징을 가했다. 다만, '더 글로리'가 노 브레이크로 달려갈 때마다 멜로 방지턱에 계속 걸린다.


그동안 멜로물에 두각을 나타냈던 김은숙 작가가 주장르에 벗어난 복수극 드라마 '더 글로리'로 돌아왔다. 학교 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이 20년에 걸쳐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박연진(임지연)과 일당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오랜 시간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문동은은 가해자 박연진,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그리고 손명오(김건우) 무리에게 천천히 접근한 뒤 계획을 실행한다. 자신 이외 또 다른 학폭 피해자 윤소희(이소이)의 사망 사건을 실탄으로 쏘아 올리며 가해자 일당들을 분열시킨다. 여기에 조력자 주여정(이도현), 강현남(염혜란)과 연대하며 이들을 조금씩 지옥의 구렁텅이로 인도한다.


문동은은 직접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지 않는다. 그들을 분열시킨 뒤, 스스로 자멸하게끔 주변에 둘러싼 것들을 하나 둘 제거하며 고립되게 만드는 것. 파트 1은 문동은의 엄청난 계획을 준비하는 모습에 중점적으로 그려냈다면, 파트 2는 문동은이 날리는 살에 맞은 가해자 일당들이 인과응보 격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에 힘을 싣는다.



박연진을 필두로 한 가해자들은 20년 전 저질렀던 자신들의 죗값을 치르게 된다. 시청자들은 가해자 무리들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극야에 영원히 갇힌 모습에 통쾌함을 느낀다고 하나, 이들의 죗값이 제대로 이어졌는지는 다소 갸우뚱하다.


박연진이 윤소희를 죽게 만든 범인은 맞지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죄를 뒤집어써 교도소로 향한다. 전재준은 미성년자 시절 강간을 저질렀으나, 그가 치른 죗값은 불륜 항목. 이사라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마약이 아닌 환각 상태에서 한 자위와 구강성교. 최혜정, 손명오는 앞서 언급된 3인이 저지른 행위로 빚어낸 결과를 받았다. 어쨌든 벌 받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결말로 느껴진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의 브레이크 없는 복수 플랜 못지않게 눈에 들어오는 건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픔 있는 자들 간 연대다. 이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도움을 준다. 이들이 한 데 뭉치면 단단해 보일 것 같은 돈과 권력, 명예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메시지도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담아낸다. 강현남, 이선아(최수인) 모녀나 주여정, 집주인 할머니(손숙) 등이 그렇다.


피해자들 간 구원 서사에만 집중했다면 좋았을 텐데,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에 멜로 서사를 덧칠하면서 뜻밖의 장벽을 만들어버렸다. 중간중간 문동은과 주여정 간의 연민과 애정 그 사이 묘한 기류를 계속 내뿜으며 흐름을 방해한다. 파트 1에서 꾸준히 떡밥을 던지더니 기어이 파트 2에 오면서 이 두 인물을 사랑으로 엮어 함께 복수를 준비하는 결말로 도달한다. 갑작스러운 멜로 끼얹기 때문인지 이들의 연대가 크게 공감되지 못한달까. 복수를 열망하는 주여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방해가 됐다.


'더 글로리'에 출연한 배우들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인 송혜교부터 악인으로 분한 임지연, 박성훈, 김히어라, 차주영 등까지 한 명 한 명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


매거진의 이전글 '동백꽃', '스캐'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졌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