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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pr 01. 2023

무딘 칼날로 마음의 벽 제거하기

영화 '길복순' 리뷰 

영화 '길복순'을 보고 나면, 전도연은 명불허전 톱티어 일타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이고, 전도연에게 상당히 의존한 작품이라는 또 다른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 메이커' 등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의 신작이자, 넷플릭스 공개 전 베를린 국제영화제 스페셜 부문에 초청돼 주목받고 있다.


업계 최고의 킬러답게 길복순은 항상 수를 먼저 계산하는 습관을 지닌다. 킬러로 임무를 트라이할 때, 엄마로서 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길복순이 수를 계산하는 장면부터 변성현 감독의 장기인 스타일리시하고 만화 같은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내내 길복순이 펼치는 액션은 세련되고 임팩트가 강한다. '킬 빌', '킹스맨', '존 윅' 시리즈에서 볼 법한 카메라 구도나 액션, 연출 기법들이 집약됐고, 보는 내내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멋을 내뿜는다. 여기에 변성현 감독 특유의 위트 있는 대사들이 곁들여져 보는 맛이 샘솟는다.



트라이해서 어떻게든 성공하는 예리한 칼날을 지닌 A급 킬러임에 반해 사춘기에 접어든 딸 길재영(김시아)을 대할 때만큼 길복순은 무딘 칼날이다. 서로에게 터놓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마음의 벽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으로서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다만, 길복순 모녀의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깊이는 아쉽다. 극적인 모녀갈등과 해소를 위해 투입한 딸의 동성애 코드를 이용한 느낌이 너무나 짙고, 감정선도 어딘가 모르게 뚝뚝 끊긴다. 허술한 부분을 전도연의 아우라와 내공으로만 메꾸고 있다는 것.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영화답게 '길복순'에서 전도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그의 눈빛과 움직임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기고, 기시감 느껴질 법한 부분을 그가 등장하면 새로운 것처럼 흥미와 흡인력을 높인다. 짧았지만, 연습생 에이스 영지(이연)와의 케미가 빛났던 것도 전도연의 역량 덕분. 다만, 설경구나 이솜, 구교환, 김성오 등 배우들의 밋밋한 쓰임새는 아쉬울 따름.


전체적으로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의 대표작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많이 닮아있다. 스타일리시함과 누아르적인 느낌, 여운 남기는 메시지까지. 그러나 이보다 더 나아갈 한 방이 아쉽다. 그런데도 '길복순'을 보게 만드는 건, 전도연의 한 경기 스페셜급 연기력이 있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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