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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23. 2023

궁금하긴 한데, 딱히 알고 싶진 않아

영화 '귀공자' 리뷰

자칭 '프로'라고 셀프소개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쁜 미소를 띠는 저 남자, 눈에 밟혀서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반드시 알아내야겠다고 덤벼들고 싶진 않다. 저 남자를 제외하면 그다지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구성 투성이기 때문이다.


박훈정 감독이 작년 이맘때 영화 '마녀 Part2. The Other One' 선보인 이후 신작 '귀공자'로 컴백했다. 그동안 멜로드라마에서 활약해 눈도장받았던 김선호가 첫 스크린 작으로 누아르로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귀공자'를 보면서 가장 흥미를 끄는 건, 김선호가 분한 귀공자 캐릭터다.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여준 그가 왜 코피노 출신인 마르코(강태주)의 주변을 맴돌면서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속내와 미소를 드러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혼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김선호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소가 주는 기운이다. 그동안 활약했던 드라마에선 선하고 훈훈함을 안겨줬다면 '귀공자'에선 은은한 광기를 풍기며 그가 연기하는 귀공자의 '맑눈광' 이미지를 강조한다. 여기에 섬뜩한 대사들을 깔끔하게 소화하면서 '이 구역의 도른 자' 포스를 강력하게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선호의 스크린 데뷔는 성공적이다.



문제는 '귀공자'는 김선호표 살인미소로 118분 분량을 뽑아낸 듯한 느낌이다. 쉽게 말해, 김선호 인물 한 명을 제쳐두고 바라보면 딱히 신선하지도 않고 영화 완성도도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먼저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가 매력적이지 못하다. 마르코가 한국에 가는 이유, 마르코를 쫓는 캐릭터들에 크게 몰입되지도 않고 후반에 다다르면 마르코의 존재감은 귀공자의 아우라에 묻혀 희미해진다. 여기에 후반부에 급공개되는 반전도 딱히 놀랍지도 않고 '대체 왜 이렇게 했을까?' 의문만 심어줬다.


그래서인지 198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귀공자'에 합류한 신인 배우 강태주의 활약이 아쉬워 보인다. 최근 박훈정 감독이 김다미('마녀'), 신시아('마녀2') 등 자신의 작품에서 신인들을 발굴해 이들의 매력을 최대한 끄집어낸 반면, 강태주는 그렇지 못했다. 배우의 역량을 100% 다 발휘하기엔 캐릭터가 기시감 덩어리였다.


마르코를 쫓던 또 다른 미스터리한 캐릭터 윤주를 연기한 고아라 또한 '마녀2'에선 아쉽다. 그도 강태주처럼 캐릭터의 제한된 설정, 그리고 애매한 분량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마 빌런 한 이사 역을 소화한 김강우가 전형적인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을 정도랄까.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인 '신세계'가 남긴 족적에 10년 넘게 붙잡혀 있는 상태다. 물론 '신세계'처럼 누아르만 고집할 필요가 없고, 색다른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세계' 이후에 선보이는 작품마다 모든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 없다는 게 문제이며, '귀공자'도 평판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선호가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샘솟았고 재미가 느껴졌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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