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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l 21. 2023

'나다움'을 찾아가는 핑크빛 여정

영화 '바비' 리뷰 

인류는 시작부터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있었고, 인형은 여자아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소꿉놀이를 통해 엄마 역할을 강조하게 만든 여자아이와 인형의 관계는 바비 인형이 등장하면서 바뀌었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명제처럼 바비는 모든 여자아이들의 꿈이 됐고, 페미니즘을 신장시키는 데 적잖은 공헌을 끼치며 핑크빛 미래를 심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되려 족쇄가 되어버렸다.  


그레타 거윅이 연출한 영화 '바비'는 스테레오타입처럼 굳어진 바비인형을 소재로 풍자와 역설, 반어법으로 그려낸다. 바비랜드와 리얼 월드(현실 세계)라는 가상과 현실, 그리고 관객들의 현실과 스크린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바비랜드에는 전형적인 바비(마고 로비)를 필두로 대통령, 물리학자, 의사, 우주비행사, 노벨상 수상자 등 온통 바비들이 이뤄낸다. 반면, 켄은 직업도 없이 그저 '바비 바라기' 의미에 그친다. 현실에서 남녀 간 보이지 않는 차별 및 유리천장을 완전 전복시켰다.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바비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고, 결국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리얼 월드로 넘어가게 된다.


전형적인 바비를 기다리고 있는 리얼 월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을 둘러싼 시선을 통해 그는 현실 여성들이 겪는 고충과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여성을 정형화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 반대로 켄은 남성 중심의 리얼 월드에 넘어와 시선의 '주체'가 됐고,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남성성'에 눈을 뜬다. 바비랜드 속 바비와 켄의 위치가 역전됐고, 이는 곧 '켄덤랜드'로 바뀌는 결정타로 돌아온다.


이렇게 '바비'는 바비랜드와 현실세계, 두 세계를 오가면서 바비와 켄 두 캐릭터의 계급이 전복되는 모습을 메시지로 담되, 블랙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이는 바비와 켄의 대사에 녹아내 웃음을 끊임없이 유발한다. 



물론 자의적 해석이나 착각은 하지 말라는 듯 영화는 빙빙 돌리지도 않고 투 머치 토커라 느껴질 만큼 페미니즘을 외친다. 영화 첫 장면부터 끊임없이 끼어드는 내레이션의 설명만 봐도 그렇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주입시키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지만, 이 부분은 맨스플레인(mansplain)을 풍자해 영화적 재미로 살려낸다. 그 외 계급이 전복된 캐릭터들을 활용한 재미도 군데군데 배치하고 있다.


그러면서 엔딩은 "바비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단순히 페미니즘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도 괜찮다며 바비, 켄, 리얼 월드에 살고 있는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아정체성 찾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엔딩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명백하고 완벽하지 않으나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가 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비'는 메시지적 요소 이외 볼거리 하나하나가 화려하다. 바비인형들이 살고 있는 바비랜드의 비주얼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유쾌하고 만화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장난감 재질의 바비하우스, 바비 의상들, 조그마한 자동차, 구급차 키트, 바비의 일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제4의 벽(현실과 극 중 세계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넘나드는 유머 포인트도 맛깔난다.


전형적인 바비를 연기한 마고 로비는 인형과 사람 중간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삐그덕하면서도 그럴듯한 디테일한 연기를 펼친다. 걸음걸이부터 손동작, 미소까지 '바비 인형 인간화'를 대변한다. 바비를 부각하게 만드는 켄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말 그대로 '킹받는' 연기로 러닝타임 내내 시선강탈한다. '바비'가 라이언 고슬링의 또 다른 얼굴을 끄집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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