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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17. 2023

상극 요소들의 끝없는 핵분열 반응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원자의 아버지 혹은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vs 죽음이자 이 세상의 파괴자


할리우드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두 단어를 하나의 필름에 담아놨다. 이를 비롯해 서로 충돌하게 되는 상극 요소들이 계속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며 180분 러닝타임을 꽉 채웠다.


'오펜하이머'는 영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원자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안 머피)의 전기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학창시절과 원자폭탄 개발을 진행했던 '맨해튼 프로젝트', 1954년 오펜하이머의 밀실 청문회, 그리고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청문회 4가지 시점을 교차하며 등장한다. 그동안 현란한 플롯 마법을 펼쳤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작들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보는 이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제법 친절하게(?) 섞었다.


첫 문장에서 언급했듯,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주요 업적인 원자폭탄 발명을 두고 세상을 바꾼 선구자이자 동시에 파괴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라는 두 가지 면을 꾸준히 비교하며 과학 발전으로 인해 윤리적 딜레마를 겪는 과학자들의 내적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오펜하이머의 심리, 스트로스와의 대립 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과학자의 윤리적 딜레마 이외 오펜하이머가 그동안 걸어온 과정에서 느꼈던 또 다른 감정,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개인서사,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처럼 받게 되는 형벌 또한 '오펜하이머'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놀란의 페르소나' 킬리언 머피가 소위 '연기 하드캐리'를 펼친다. 맑고 투명한 파란 눈동자만으로 혼돈과 사랑, 불안과 욕망, 고뇌와 환희 등 다양한 감정을 표출해 흡인력을 높인다. 그동안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지긴 했지만, '오펜하이머'는 킬리언 머피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것 같다.



신기하게도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양가적 감정 이외에도 공존하기 힘든 상극에 위치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부딪쳐 핵분열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컬러와 흑백 장면,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구원과 멸망, 애국과 매국, 융합과 분열, 이론과 실험이 이 영화 한 편에서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다.


평소 'NO CG' 연출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 스타일이 '오펜하이머'에서도 이어진다. 예고부터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트리니티 실험 시퀀스는 '경이롭다'는 극찬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폭탄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빛과 불꽃이 발현되는 무성(無聲)의 순간은 숨죽이게 만들고, 뒤이어 따라오는 거대한 폭발음은 실로 핵실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답다.


그 외에도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리를 쉽게 이입할 수 있게 영상화한 부분도 대단하다. 핵과 음악, 빛과 어둠이 분열하는 모습으로 시각화하여 인간의 내면을 스펙터클하게 만들어낸다.


'오펜하이머'는 주인공 킬리언 머피를 비롯해 맷 데이먼, 라미 말렉, 조쉬 하트넷, 데인 드한, 케네스 브래너, 게리 올드먼 등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주조연부터 카메오까지 수놓은 화려한 라인업으로 개봉 전부터 주목받았고, 높은 기대치에 걸맞은 연기 파티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스트로스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단연 압권이다. 한동안 아이언맨으로 기억됐던 그가 새로운 얼굴을 선사하며 명배우 포스를 뽐낸다. 또 킬리언 머피와 부딪치는 연기 호흡도 감탄을 안긴다.


이에 반해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의 분량이 아쉽다. 이들이 연기한 캐서린 키티 오펜하이머, 진 태틀록이 오펜하이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이었음에도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오직 오펜하이머의 매력을 더하기 위해 소비된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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