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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21. 2023

'한국형' 수식어를 재정의하다

드라마 '무빙' 리뷰

제작비를 500억 원 투입한 디즈니+의 야심작 '무빙'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2년 전인 2021년 11월 12일, 대한민국에서 론칭할 당시 첫 주자로 '무빙'을 내세웠더라면, 디즈니+가 넷플릭스, 티빙 등과 호각지세를 겨뤘을 것이다. 이제야 나타난 디즈니+의 구원자 등판이다.


유명 웹툰작가 강풀의 동명원작을 드라마화한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거대한 위험에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이다. 그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DC 확장 유니버스 등 할리우드의 어마무시한 히어로물에 익숙했던 국내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한국형' 히어로물이다.


'무빙'은 공개되기 전부터 기대보다 우려의 반응이 많았다. 먼저 '한국형'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불신이다. 엄청난 자본력으로 무장한 할리우드보다 제작비는 밀리지만 그에 못지않다, 그러면서 한국 정서에 맞춰 표현하고 로컬라이징한 의미를 내포한 '한국형'을 내건 작품들 대체로 퀄리티가 좋지 못했기 때문. 게다가 OTT로 공개되는 드라마들이 6부작에서 12부작으로 만드는 데 비해 '무빙'이 총 20부작으로 TV 미니시리즈급으로 기획돼 현 트렌드와 맞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 부정적인 예측을 하나하나 부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안기부 주요 인물이자 초능력자인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 김두식(조인성)부터 이들의 능력을 물려받은 정원고 3인방 장희수(고윤정), 김봉석(이정하), 이강훈(김도훈) 등 주요 인물뿐만 아니라 서브 캐릭터들까지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어 히어로 드라마인 만큼,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양한 초능력 또한 입덕 포인트다. 하늘을 나는 비행 능력을 지닌 김두식-김봉석 부자)부터 무한 회복능력 소유자 장주원-장희수 부녀, 프랭크(류승범), 괴력 부자 이재만(김성균)-이강훈, 오감능력을 갖춘 이미현-김봉석 모자, 블랙 요원 출신 봉평(최덕문)의 전기 능력을 물려받은 전계도(차태현) 등이 자신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벌이는 액션 신을 펼치는데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정교함과 박진감을 자랑한다.


사실 '무빙'의 진짜 강점은 원작자인 강풀 작가가 직접 구성한 탄탄한 서사다. 극 중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능력을 숨기고 사는데, 능력이 발동하게 되는 건 외부의 침공도, 존재론적 고민도 아닌 한국 사회만이 가진 여러 시스템적인 부조리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한국 근현대사를 훑으면서 기억하기 싫거나 불편한 기억들을 끄집어내 히어로물과 엮어 가족의 비극사나 외부의 침공 등 다소 특이한 상황에서 능력이 발현되는 MCU나 DCU 등 다른 히어로물들에 비해 몰입하기 쉽다.


20부작을 전개하는 동안 코너 속 코너처럼 에피소드별로 히어로물 이외 다양한 장르를 넘나 든다. 정원고 3인방이 포문을 열었던 1~7회는 풋풋한 하이틴으로 구성해 몽글몽글한 감성을 자극하고, 부모 세대들이 활약했던 8~14회는 설렘과 절절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로맨스와 애틋한 가족애까지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인 셈이다. 이 빌드업을 이어받은 15회부터는 앞서 풀어놨던 떡밥들을 회수함과 동시에 본줄기에 집중하며 아낌없이 터뜨린다. 기획 단계부터 20부작을 고집했던 강풀 작가의 뚝심에 경의를 표한다.


'무빙'의 훌륭한 완성도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소문났다. 외신의 극찬은 물론이며, 전 세계 OTT 플랫폼 내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2023년 34주 차 디즈니+ TV쇼 부문 월드와이드에서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빙' 공개일인 수요일 대신 '무(빙)요일'을 기다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무빙'의 단점이라고 하면 후속 시즌 '브릿지'(가제) 제작이 확정된다 해도 언제 나올지 미지수라는 점. 여기에 강풀 작가가 웹툰 '무빙', '브릿지'의 뒤를 잇는 '히든'이 '무빙' 실사화 작업으로 인해 아직까지 연재 시작을 못한 상황이기에 완결 시즌까지 나오길 기다리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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